《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는 일본 에도(江戶) 시대 중기인 쇼토쿠(正德) 2년(1712년)경에 편찬된 일본의 백과사전이다. 편집자는 오사카(大阪)의 의사였던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 1654~?)이다. 책의 명칭은 중국 명(明)나라 말기인 만력(萬曆) 35년(1607년)에 왕기(王圻)와 그의 아들 왕사의(王思義)가 편찬한 유서(類書)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 유래하였으며, '삼재(三才)'는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한다. 《화한삼재도회》는 이 체제를 본떠 천부(天部), 인부(人部), 지부(地部)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일본 관련 내용을 대폭 보충하여 총 105권 81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편찬되었다.
각 항목마다 그림이 수록되어 있으며, 본문은 한문으로 해설되어 있다. 표제어는 한자로 기재되고 우측에는 히라가나로 일본어 뜻(화명, 和名)을, 좌측에는 가타카나로 중국 음(당음, 唐音)을 부기하였다. 인용 문헌으로는 《삼재도회》, 《본초강목》(本草綱目), 《오잡조》(五雜俎),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 등이 포함되며, 조선의 《해동제국기》와 《동국통감》도 인용되었다. 저자가 의사였던 까닭에 동양 의학 관련 항목은 비교적 정확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공상의 영역이나 황당무계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40권 우류·괴류(寓類·恠類)에는 요괴 이야기도 실려 있다. 천문·지리 부분에서는 약 100년 전 일본에 유입된 《천경혹문》(天經惑問)의 영향이 확인되며, 지구 구형설을 수용한 점도 주목된다.
《화한삼재도회》는 간행 이후 에도 시대 전반에 걸쳐 널리 이용되었고, 메이지(明治) 시대에도 축쇄판이 출간될 정도로 약 2세기 동안 일본인들의 지식 원천으로 기능하였다. 조선에는 통신사(通信使)를 통해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제11회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남옥(南玉)의 《일관기》(日觀記) 1764년 3월 27일자 기록에 따르면, 슈고(周宏)라는 승려가 조선 측에 《왜한삼재도회》(倭漢三才圖會, 즉 화한삼재도회)를 구해 주었다고 한다. 조선에 소개된 제목은 《왜한삼재도회》이며, 기록상 영조 24년(1748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명채(趙明采)의 《봉사일본시견문록》(奉使日本時聞見錄)에서 책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청령국지》(蜻蛉國志) 편찬 시 이 책을 다량 인용하였으며, 유득공(柳得恭), 정약용(丁若鏞), 한치윤(韓致奫), 성해응(成海應), 이규경(李圭景), 서유구(徐有榘) 등 당대 학자들의 저술에서도 주요 참고 문헌으로 인용되었다. 정조(正祖)가 왕명으로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도 일본의 무기와 무예에 관한 주요 참조 자료로 활용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1713년 간본과 1772년 간본 두 종의 목판본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