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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궁

화이트홀궁(영어: Palace of Whitehall)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했던 잉글랜드 군주의 공식 궁전이다. 템스강과 오늘날의 세인트제임스파크 사이의 부지에 있었으며, 1530년부터 1698년까지 약 168년간 잉글랜드 군주들의 주요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1698년 발생한 대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1622년 건축가 이니고 존스(Inigo Jones)가 설계한 방케팅 하우스(Banqueting House)만이 남아 있다.

기원과 명칭

화이트홀궁의 부지는 원래 1245년부터 요크 대주교들의 런던 거주지였던 '요크 플레이스(York Place)'가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거주한 대주교는 토머스 울지 추기경(Cardinal Wolsey)으로, 그는 이 건물을 크게 확장하고 현대적으로 개조하였다. 그의 몰락 이후 헨리 8세가 이 부지를 인수하여 재건축하고 자신의 주요 거주지로 삼았다. '화이트홀(Whitehall)'이라는 이름은 원래 궁전의 일부였던 흰 벽돌로 지어진 회의장(hall)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헨리 8세 시대의 확장

1529년 헨리 8세가 울지 추기경이 몰락한 후 요크 플레이스를 접수하면서 화이트홀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궁전은 바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뉘어 건설되었다. 서쪽 구역에는 테니스, 볼링, 닭싸움 관람 등 왕실의 여가 활동을 위한 공간이 있었고, 동쪽 구역에는 울지의 저택을 중심으로 왕의 사적인 방이 위치한 긴 회랑(privy gallery)이 조성되었다. 두 구역은 홀바인 게이트(Holbein Gate)라고 불리는 문루로 연결되었다.

헨리 8세 치세 동안 화이트홀궁은 거의 상시 공사장 상태였다. 왕은 이 궁전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세인트제임스파크, 그린파크, 하이드파크, 리전트파크로 이어지는 대규모 사냥터도 조성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헨리 8세가 시작한 건축 공사가 완료되었다.

규모와 역할

화이트홀궁은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으로, 방의 수만 1,500개가 넘었다. 단일 건물이 아니라 수많은 건축물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형태였으며, 약 1,000명 이상의 거주자가 상주하는 하나의 거대한 마을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왕의 거주지일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정부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스튜어트 왕조 시기에 이르러 제임스 1세를 위해 이니고 존스가 새로운 궁전을 설계했으나 완성된 것은 방케팅 하우스뿐이었다. 이 건물은 1619년부터 1622년 사이에 건축되었으며, 잉글랜드 왕들의 주요 접견실 역할을 수행했다. 찰스 1세는 1649년 이 방케팅 하우스 앞에서 처형되었다.

1698년 대화재와 소실

1698년 1월 4일 발생한 화재로 궁전의 주거 구역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미 1691년에도 화재가 발생해 일부가 소실된 바 있었으나, 1698년의 화재는 궁전의 전체를 사실상 파괴하였다. 이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켄싱턴궁으로 거처를 옮겼고, 앤 여왕은 화이트홀을 떠나 세인트제임스궁으로 왕실의 공식 소재를 이전함으로써 화이트홀궁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화재 이후 부지는 영국 정부의 행정 관청들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화이트홀(Whitehall)이라는 이름은 이 궁전 자리와 주변 도로를 가리키며, 영국 정부의 상징적 별칭으로도 쓰이고 있다. 현재 궁전의 잔재 중 방케팅 하우스와 일부 구조물만이 70 화이트홀 건물(캐비닛 오피스가 사용) 내에 남아 있다.

참고 자료

  • Encyclopaedia Britannica, "Whitehall Palace"
  • Royal Palaces, "An Encyclopedia of British Royal Palaces", "Whitehall Palace"
  • 위키백과, "화이트홀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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