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한(洪翼漢, 본명: 홍습(洪霫), 1586년 12월 31일 ~ 1637년 3월 30일)은 조선 인조 시대의 문신이자,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이다. 자는 택원(澤遠)·백승(伯升)이고, 호는 화포(花浦)·운옹(雲翁)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생애
홍익한은 1586년 경기도 강화유수부에서 출생하였다. 여섯 살 때 큰아버지인 홍대성(洪大成)의 양자로 출계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식년생원시에 갑과 2등으로 입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624년(인조 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성균관 사서(司書)를 거쳐 사헌부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경상도 고령현감을 지냈으나, 김육(金堉)의 탄핵을 받고 스스로 사퇴하여 강화도로 낙향하였다. 1629년 평안도 평양 서윤(庶尹)에 임명되었으나 이듭해 사임하였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속국화를 요구하며 용골대(龍骨大) 등을 사신으로 보내오자, 홍익한은 청 사신을 처형하여 국위를 세우자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崔鳴吉) 등의 주화론(主和論)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항복하자(삼전도의 굴욕), 홍익한은 제자인 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와 함께 청군에 끌려가 심양(瀋陽)으로 압송되었다.
1637년 3월 30일, 청나라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채 봉천성(奉天城, 현재의 선양) 서문 앞에서 참수형으로 순절하였다. 이들 세 사람을 후세에서 삼학사(三學士)라 부른다.
사후
홍익한은 사후 도승지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705년(숙종 31)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 내려졌다. 1681년(숙종 7) 남한산성에 현절사(顯節祠)를 세워 홍익한과 윤집, 오달제를 제향(祭享)하였다. 묘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에 있다. 또한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되었다.
가계
홍익한의 증조부는 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叙疇)이고, 조부는 홍애(洪磑)이다. 생부는 홍이성(洪以成)이며, 양부는 홍대성(洪大成)이다. 초배는 양천 허씨(군수 허식의 딸)이며, 계배는 능성 구씨(진사 구곤원의 딸)이다. 자녀로는 2남 2녀가 있었으나,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일가족 다수가 전사하거나 자결하였다. 이후 사후양자로 홍응원(洪應元)이 계승하였다.
관련 문화재
- 홍익한 택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향토유적 제17호
- 홍학사 비각(洪學士碑閣):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소재,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홍익한과 그의 가족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