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용(洪萬容, 1631년~169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백함(伯涵), 호는 금화(金華),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출생과 가계
아버지는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며, 어머니는 정명공주(貞明公主)이다. 정명공주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宣祖)와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딸이므로, 홍만용은 선조와 인목왕후의 외손자이다. 이러한 가계로 인해 홍만용은 이후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풍산 홍문(豊山 洪門) 가문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의 후손으로는 홍봉한(洪鳳漢)·홍인한(洪麟漢)·홍상한(洪象漢) 등이 있으며,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고조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관직 생활
1662년(현종 3)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 이후, 검토관, 헌납, 수찬, 사헌부지평, 이조좌랑, 부교리, 이조정랑, 교리,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다시 장원하여 정3품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교리, 부교리, 겸문학, 이조정랑, 부응교, 응교, 동부승지, 대사간, 호조참의, 우부승지, 병조참의, 이조참의, 우승지, 예조참의, 좌부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즉위 후인 1675년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680년 도승지, 이조참판, 대사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81년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 15)에는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으며, 귀국 후 공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우참찬 겸 경연지사, 대사헌 등을 지냈다.
말년
1692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벼슬을 사퇴하고 경기도 고양군으로 낙향하였으며,同年 사망하였다. 향년 62세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두 차례 과거에 장원하고 글을 잘하였으며 해로운 일이 없어 복록을 누리다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