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浩周, ? ~ ?)는 중국 후한 말기에서 조위(曹魏) 시기에 활동한 관료로, 자는 공이(孔異)이며 상당군(上黨郡) 출신이다.
건안(建安) 연간에 출사하여 소현령(蕭縣令)·서주자사(徐州刺史)를 지냈다. 번성 전투(樊城戰鬪) 당시 우금(于禁)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나, 관우(關羽)에게 패하여 우금·동리곤(東里袞)과 함께 사로잡혔다. 이후 관우를 물리친 손권(孫權)은 호주 등을 압송하였다.
연강 원년(220년), 위왕 조조(曹操)가 죽고 조비(曹丕)가 뒤를 이었다. 손권은 호주 등을 위나라로 송환하면서 귀순의 뜻을 내비친 서신을 함께 보냈다. 손권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던 호주는 조비에게 손권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함께 사로잡혔던 동리곤은 손권이 진정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겨울, 헌제(獻帝)가 조비에게 선양함으로써 후한이 멸망하고 조비가 황제(문제)로 즉위하였다. 문제는 손권을 오왕(吳王)에 봉하고 호주를 사자로 보냈다. 손권과의 연회에서 손권은 호주에게 아들 손등(孫登)을 볼모로 보낼 것을 약조하였으나, 호주가 돌아간 후 갖은 핑계를 대며 손등을 보내지 않았다. 문제는 이에 오나라의 사자를 억류하였다.
손권은 호주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의 어린 아이와 손소(孫邵)·장소(張昭)를 조정에 보내겠다고 약조하였으나 끝내 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이에 문제는 호주를 내쫓고 다시는 임용하지 않았다.
호주에 관한 주요 기록은 어환(魚豢)의 《위략(魏略)》 유세전(游說傳)에 남아 있으며,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권47 오주전(吳主傳) 배송지주(裴松之注)에 인용되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