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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

정의

호족(豪族)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사회 변동을 주도한 지방 세력을 가리키는 역사 용어이다. 한자 '호(豪)'는 털이 곧고 질 좋은 짐승을 뜻하며 뛰어나고 우수함을, '족(族)'은 친족 집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호족은 지방에 기반을 둔 유력한 친족 집단이라는 뜻을 지닌다.

중국사에서의 호족

호족이라는 용어는 원래 중국사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주로 한대(漢代)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 지방의 토착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였으며, 중앙의 귀족과 대비되는 존재였다. 중국의 호족은 대토지 소유자로서 다수의 노비와 소작인을 거느렸고, 사인(舍人)이나 빈객(賓客)이라 불리는 비혈연적 무력 집단을 보유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문화의 독점적 향수자였으며, 위진남북조 시대의 문벌귀족은 호족 중 유력자가 고위 관직에 나아감으로써 형성되었다. 수·당대의 과거제는 중·하층 호족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창출된 제도로 평가된다.

한국사에서의 호족

한국사에서 호족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전환기에 등장한 지방 세력으로, 그 개념과 성격은 중국의 경우와 유사하다.

1. 등장 배경

신라 하대에 진골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 틈을 타 지방에서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유력자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이 호족이다.

2. 기원

호족의 기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 귀족이나 6두품 계층이다. 둘째, 주(州)와 군(郡)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이직자(吏職者)들이다. 셋째, 촌의 행정을 담당하던 촌주(村主)들이다. 전자의 두 부류는 성주(城主)나 장군(將軍)을 칭하는 대호족이 되었고, 후자는 대감(大監)이나 제감(弟監)을 칭하는 소호족이 되었다. 이 밖에도 장보고로 대표되는 해상 세력, 군진(軍鎭) 세력 출신의 호족도 존재하였다.

3. 성격과 특징

호족은 대토지 소유를 바탕으로 막대한 경제력을 보유하였다. 또한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중앙과 유사한 관부 조직(병부, 창부 등)을 갖추어 지역민을 통치하였다. 문화적으로도 학원을 경영하고 자제들을 수학시키는 등 문화적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신라의 골품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풍수지리설과 불교 선종(禪宗) 사상을 자신들의 세력 기반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하기도 하였다.

4. 고려 건국 이후의 변화

호족 세력은 고려 왕조를 성립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고려 건국 후 호족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 부류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門閥貴族)으로 전환되었고, 다른 한 부류는 지방에 남아 왕권 강화와 더불어 향리(鄕吏)의 길을 걸었다. 다만 지방의 향리들도 과거나 천거를 통해 중앙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다. 이후 광종(光宗) 대에 이르러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등의 정책을 통해 호족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견제와 숙청이 이루어졌다.

5. 명칭의 다양성

호족은 여러 다른 명칭으로도 불렸다. 관족(冠族), 대족(大族), 우족(右族), 망족(望族), 대가(大家), 호가(豪家)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유력한 성씨 집단이라는 뜻에서 망성(望姓), 저성(著姓), 대성(大姓) 등으로도 불렸다. 토호(土豪)라는 용어도 보이나, 이는 호족보다 세력이 약한 집단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 이기백, 『한국사신론』(1967)
  • 김갑동, 『나말여초의 호족과 사회변동연구』(1990)
  • 정청주, 『신라말고려초 호족연구』(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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