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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우지마사

호조 우지마사(일본어: 北条氏政, 1538년 ~ 1590년)는 일본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고호조씨(後北条氏) 제4대 당주이다. 아버지는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이며, 어머니는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딸 즈이케이인(瑞溪院)이다. 정실은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딸 오바이인(黄梅院)이다.

생애 개요

1538년(또는 1539년) 사가미국(相模国)에서 태어났다. 형인 우지치카(氏親)가 요절함에 따라 후계자가 되었고, 1559년 아버지로부터 가독을 상속받았다. 다만 우지야스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부자(父子) 양두 체제로 실권은 아버지가 계속 쥐고 있었다.

1561년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의 대규모 오다와라 성 공격을 농성전으로 격퇴하였고, 이후 간토 지역에서 호조씨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571년 아버지 우지야스가 사망한 후, 다케다 신겐과 동맹을 부활시키고 우에스기 겐신과의 동맹을 파기하였다. 이후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와 대립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1582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사망한 후, 호조씨는 간토 지역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여 사가미, 이즈, 무사시, 시모우사, 가즈사, 고즈케 전역과 히타치, 시모쓰케, 스루가 일부에 이르는 약 240만 석의 최대 판도를 구축하였다.

오다와라 정벌과 최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하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호조씨와 대립하게 되었다. 히데요시는 호조 우지마사 부자에게 교토 상경과 신종을 요구하였으나, 우지마사는 이를 지연시켰다. 1589년 호조측 가신 이노마타 구니노리(猪俣邦憲)가 사나다(真田) 영지인 나구루미 성(名胡桃城)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히데요시는 이를 이유로 1590년 호조 토벌을 단행하였다(오다와라 정벌).

도요토미군 약 22만의 대군에 맞서 오다와라 성에서 약 3개월간 농성하였으나, 여러 지성이 차례로 함락되면서 항복하였다. 히데요시는 화목 조건을 깨고 우지마사에게 할복을 명하였고, 1590년 7월 11일, 동생 호조 우지테루(北条氏照)와 함께 할복하였다. 향년 53세.

인물 평가

후세의 평가는 엇갈린다. 『호조키』(北条記) 등 후대 사료에서는 우지마사를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식사할 때 밥에 붓는 국의 양도 맞추지 못했다는 '밥에 국 두 번 붓기' 일화가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 학계에서는 결과론적 평가라는 반론이 제기되며, 우지마사가 아버지 시대 이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유능한 동생 및 가신들과 협력하여 무공을 세운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무능한 무장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가족애가 두텁고 애처가로도 알려져 있다.

우지마사의 사세(辞世)는 "비구름 속에 울부짖는 저 달도 이 가슴의 안개도 걷어내주는 듯한 이 가을 저녁의 바람"(雨雲の おほえる月も 胸の霧も はらいにけりな 秋の夕風)과 "이내 몸 이제 사라지려 하느니 기억할지라 공으로부터 와서 공으로 간다는 걸"(我身今 消ゆとやいかに おもふへき 空よりきたり 空に帰れば)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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