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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살라 왕국

호이살라 왕국(칸나다어: ಹೊಯ್ಸಳ)은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오늘날 인도 카르나타카주를 중심으로 남인도 데칸 고원 지역에서 존재했던 칸나다계 왕국이다. 수도는 초기에는 벨루르(Belur)에 있었으나 이후 할레비두(Halebidu, 고대 명칭 드와라사무드라)로 이전하였다.

기원과 건국

호이살라 왕조의 기원은 카르나타카주 서고츠산맥의 고지대인 말레나두(Malenadu)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칸나다 민화에 따르면, 자이나교 구루 수다타를 호랑이로부터 구하기 위해 살라(Sala)라는 청년이 호랑이를 타격(고대 칸나다어로 '호이', hoy)하여 죽인 데서 '호이살라'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전설은 1117년 비슈누바르다나 왕의 벨루르 비문에 처음 등장하나, 여러 모순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보다는 설화로 간주된다. 역사학자들은 호이살라 왕조를 말레나두 지역의 토착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초기 비문에서 이들을 '말레파롤간다'(Maleparolganda, 언덕의 군주)라고 칭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호이살라 가문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약 950년경으로, 아레칼라(Arekalla)를 지역 추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니리파 카마 2세(Nripa Kama II, 재위 1026~1047) 시기에 왕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초기에는 서찰루키아 제국의 봉신으로 존재하였다.

역사

비슈누바르다나(Vishnuvardhana, 재위 1108~1152) 왕 시기에 호이살라는 본격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촐라 제국을 상대로 탈라카두 전투에서 승리하여 강가바디 지역을 병합하였고, '탈라카두곤다'(Talakadugonda, 탈라카두의 정복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후 서찰루키아와 칼야니 칼라추리 왕국 간의 전쟁을 틈타 카르나타카 지역과 타밀나두 북부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비슈누바르다나의 손자 비라 발랄라 2세(Veera Ballala II, 재위 1173~1220)는 1193년 서찰루키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호이살라 제국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그는 판디아 왕국의 촐라 침공을 격퇴하고 촐라 왕을 복위시켜 '닥시나 차크라바르티'(Dakshina Chakravarthi, 남쪽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았다. 1225년경 호이살라는 타밀나두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스리랑감 근처 칸나누르 쿠팜을 남부 주도로 삼았다.

13세기 말 비라 발랄라 3세(Veera Ballala III, 재위 1292~1343)는 판디아의 봉기로 상실한 타밀 지역을 탈환하고 왕국의 북부와 남부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14세기 초 델리 술탄국 알라웃딘 할지의 남인도 원정으로 수도 할레비두가 1311년과 1327년 두 차례에 걸쳐 약탈당했다. 비라 발랄라 3세는 티루반나말라이에 주둔하며 델리 술탄국과 마두라이 술탄국에 약 30년간 저항하였으나, 1343년 마두라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호이살라의 영토는 퉁가바드라 강 지역에서 비자야나가라 제국에 병합되었다.

행정과 사회

호이살라 왕국은 군주제로 운영되었으며, 왕국은 나두(Nadu), 비샤야(Vishaya), 캄파나(Kampana), 데샤(Desha) 순의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었다. 수석대신은 '파차 프라다나'(Pancha Pradhana), 외무대신은 '산디비그라히'(Sandhivigrahi), 최고 재무관은 '마하반다리'(Mahabhandari)로 불렸다. 군대는 단다나야카(Dandanayaka)가 지휘하였고, 왕실 호위를 위한 정예 근위대 '가루다'(Garuda)가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주인이 사망하면 순사하는 충성심으로 유명했다.

사회적으로는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였으나, 여성의 지위는 비교적 다양했다. 비라 발랄라 2세의 왕비 우메드비는 남편의 원정 기간 동안 할레비두 정부를 운영하고 반군을 진압한 기록이 남아 있다. 샨탈라 데비 왕비는 춤과 음악에 능했으며, 사원 무용수(데바다시) 제도가 일반적이었다.

경제

호이살라 정부는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자급자족하였다. 고지대(말나드)에서는 목축과 과수원, 향신료 재배가 이루어졌고, 저지대(발리나드)에서는 벼와 곡류가 주로 재배되었다. 국가는 저수지, 운하, 우물 등 관개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였다. 서해안 무역을 통해 아랍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중국인 등이 유입되었으며, 남인도는 직물, 향신료, 보석, 백단향 등을 중국,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에 수출하였다.

종교

호이살라 왕조는 초기에 자이나교를 후원하였으나, 비슈누바르다나 왕이 철학자 라마누자의 영향으로 비슈누파 힌두교로 개종한 이후 힌두교 후원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왕실은 전반적으로 종교적 관용을 보여, 자이나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공존하였다. 이 시기 바사바, 마드바차리야, 라마누자 세 철학자의 활동으로 비라샤이바파, 드바이타 베단타, 스리바이슈나바파 등 중요한 종교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언어와 문학

호이살라 통치자들은 칸나다어를 적극 후원하였다. 역사가 셸던 폴록에 따르면, 호이살라 시대에 칸나다어는 산스크리트어를 대체하여 궁정 언어로 자리잡았다. 비문은 주로 칸나다어로 작성되었으며, 시적인 언어와 꽃무늬 삽화가 특징이다. 자나(Janna)의 《야소다라차리테》, 루드라바타(Rudrabhatta)의 《자간나타 비자야》, 하리하라(Harihara)의 《기리자칼랴나》 등이 대표적 문학 작품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철학자 마드바차리야가 《브라흐마수트라》 주석서 등을 저술하였다.

건축

호이살라 왕국은 군사적 성취보다 예술과 건축으로 오늘날 주목받고 있다. 호이살라 건축 양식은 서찰루키아 양식에서 파생되었으나 독자적인 '카르나타 드라비다'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부드러운 돌인 수프스톤(soapstone)을 사용하여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벨루르의 천나케샤바 사원(1117년), 할레비두의 호이살레스와라 사원(1121년), 소마나타푸라의 천나케사바 사원(1279년) 등이 있다. 이 중 벨루르, 할레비두, 소마나타푸라의 사원군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대 군주

이름 재위 기간
니리파 카마 2세 1026~1047
비나야디티야 1047~1098
에레양가 1098~1102
비라 발랄라 1세 1102~1108
비슈누바르다나 1108~1152
나라심하 1세 1152~1173
비라 발랄라 2세 1173~1220
비라 나라심하 2세 1220~1234
비라 소메슈와라 1234~1263
나라심하 3세 1263~1292
비라 발랄라 3세 1292~1343
비라 발랄라 4세 134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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