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산(虎巖山)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산으로,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에 해당한다. 해발 393m의 암산(巖山)이며,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호암산(虎巖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에는 금주산(金主山) 또는 금지산(金地山)이라고도 불렸으며, 금천의 주산(主山)으로 여겨졌다. 또한 산자락에 별장이 많아 주민들 사이에서는 '별장산'이라고도 불렸고, 옛날에는 '시지산'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지리적 위치 및 접근성
호암산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세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다. 정상은 행정구역상 관악구에 속한다. 경부선 석수역과 관악역, 호압사, 시흥계곡 등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으며, 호암산에서 삼성산을 거쳐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유래 및 역사
조선 시대의 대표적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 같고,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데 이를 호암(虎巖)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산세가 한양을 향해 달리는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다는 풍수지리설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한양에 재앙을 불러올 것을 우려하여 호랑이를 제압한다는 의미의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고 한다. 호압사는 1393년(태조 2년) 무학대사(자초)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호암산성(사적 제343호)
호암산 정상부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인 호암산성(서울 호암산성)이 위치한다. 성의 둘레는 약 1,547m이며, 그중 약 300m 구간에서 성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산성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안양천을 따라 한강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서해안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7월 28일 '한우물 및 주변산성지'에서 '서울 호암산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한우물(天井)
호암산성 내에는 '한우물'이라고 불리는 큰 우물이 있다. 길이 22m, 폭 12m 규모의 장방형 석축 연못으로,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항상 맑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초기에 축조된 석축지 아래에서 통일신라 시대(7~8세기 추정)의 석축지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가뭄 때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에는 군용수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석구상(石狗像)
한우물에서 동북쪽 약 50m 지점에는 길이 1.7m, 폭 0.9m, 높이 1.0m 규모의 동물 석상이 있다. 이 석상은 과거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 한양의 화재를 막기 위해 조성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개의 형상에 더 가깝고 《시흥읍지》의 기록에 근거하여 석구상(돌로 만든 개)으로 밝혀졌다. 한우물 근처에서 '석구지(石拘池)'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재가 발견되어, 한우물이 석구상과 연관되어 '석구지'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시설 및 등산 코스
호암산 정상은 '민주동산'으로도 불리며 헬기장과 국기계양대가 있다. 정상에서는 남산 서울타워, 63빌딩, 국회의사당,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 서울 강남 방향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관악산 정상의 기상관측소와 KBS 송신소 철탑도 볼 수 있다.
호암산 자락에는 '호암늘솔길'이라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늘솔길'은 '언제나 솔 향이 나는 길'이라는 뜻으로, 호압사에서 호암산 폭포까지 약 1km 구간의 무장애 숲길이다. 이 구간에는 잣나무 산림욕장(치유의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나무 데크로 되어 있어 휠체어나 노약자도 이용할 수 있다. 호암산 폭포는 2011년 산사태로 노출된 자연암반에 지하수를 활용하여 조성한 인공폭포이다.
호암길
호암길은 관악구 신림동 신림로에서 산복터널을 거쳐 금천구 시흥동 시계에 이르는 폭 20m, 길이 5,000m의 4차선 도로로, 호암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1993년 7월 23일 '호압산길'로 명명되었다가, 2000년 6월 16일 호암산의 측면 도로임을 반영하여 '호암길'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