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피게레스 페레르(스페인어: José Figueres Ferrer, 본명: 호세 마리아 이폴리토 피게레스 페레르, 1906년 9월 25일 ~ 1990년 6월 8일)는 코스타리카의 정치인, 혁명가, 농업 경영인으로, 코스타리카의 제32대 및 제36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별칭은 "돈 페페(Don Pepe)"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피게레스는 1906년 9월 25일 코스타리카 알라후엘라 주의 산 라몬(San Ramó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리아노 피게레스 포르헤스는 의사였고, 어머니 프란치스카 페레르 밍게야는 교사였으며, 두 사람 모두 카탈루냐에서 이민 온 가정 출신이었다. 피게레스의 모국어는 카탈루냐어였다. 1924년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수력공학을 공부했다. 1928년 코스타리카로 돌아와 산 크리스토발 지역에 농장을 구입했으며, 이 농장을 "라 루차 신 핀(La Lucha Sin Fin, '끝없는 투쟁')"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성공적인 커피 재배자이자 로프 제조업자로 성장하여 1,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했고, 스스로를 "농부-사회주의자"라고 칭하며 노동자들에게 주택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치 경력
1944년 코스타리카로 돌아온 피게레스는 민주당 내 민주행동 계파를 설립했고, 이듬해 사회민주당으로 발전시켰다. 이 정당은 당시 집권당이던 국민공화당(PRN)에 대항하는 세력이었다. 1948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선거 논란이 발생하자, 피게레스는 무장 봉기를 주도하여 44일간의 코스타리카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내전은 20세기 코스타리카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사건으로, 2,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전 승리 후 피게레스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임시 정부(제2공화국 건국 평의회)의 수반으로 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음과 같은 주요 개혁을 단행했다:
- 코스타리카 군대의 폐지 (코스타리카는 이후 상비군이 없는 국가가 됨)
- 여성과 문맹자에게 투표권 부여
- 은행의 국유화
- 공산당 불법화
- 새 헌법 제정
- 공교육 보장
- 흑인 이민자 자녀에게 시민권 부여
- 공무원 제도 확립
이 기간 동안 단행된 개혁은 총 834건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통령 재임 기간
피게레스는 1953년부터 1958년까지, 그리고 1970년부터 1974년까지 두 차례의 헌법상 대통령 임기를 수행했다. 1953년에는 코스타리카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당으로 평가받는 국민해방당(PLN)을 창당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코스타리카 공과대학, 국립대학, 코스타리카 전력청(ICE) 등이 설립되었고, 산업화와 중산층 육성 정책이 추진되었다.
1970년대 재임 기간에는 1972년 소련에 커피 3만 톤을 수출하는 등 경제 위기에 대응했으며,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소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가 되었다.
논란과 평가
피게레스는 미국의 중남미 독재 정권 지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1958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며 미국의 정책을 비판했고, 1954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미주기구 회의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한편 미트로힌 문서에 따르면 KGB가 그의 1970년 선거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자신도 1981년 인터뷰에서 CIA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의 가장 논란이 된 결정 중 하나는 미국의 도주 금융인 로버트 베스코에게 망명을 허용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정당은 1978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사망과 유산
피게레스는 1990년 6월 8일 산호세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지냈으며, 딸 크리스티아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을 역임하여 파리 협정의 주요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피게레스는 코스타리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며, 특히 군대 폐지와 민주주의 제도 확립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