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é María Gil-Robles y Quiñones de León, 1898년 11월 27일 ~ 1980년 2월 14일)는 스페인의 저명한 법학자이자 정치인이다. 스페인 제2공화국 시기(1931-1939)의 주요 보수주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스페인 우익 자치 연합(Confederación Española de Derechas Autónomas, CEDA)의 당수로 활동하며 스페인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살라망카에서 태어난 길 로블레스는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법률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22년 스페인 의회에 처음 선출되었으며, 가톨릭 사회 정치 사상에 기반한 보수주의와 권위주의적 시각을 표방했다.
제2공화국이 수립된 후, 길 로블레스는 여러 우익 정당과 가톨릭 단체를 통합하여 1933년 CEDA를 창설했다. CEDA는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큰 대중 정당 중 하나였으며, 농민, 중산층,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얻어 1933년과 1934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의회 내 최대 세력이 되었다. 그는 총리직을 맡지는 않았으나, CEDA 소속 의원들이 정부에 참여하고 길 로블레스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길 로블레스의 권위주의적 경향과 공화국 체제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좌파 진영의 극심한 반발을 샀고, 이는 1934년 아스투리아스 봉기 등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936년 2월 총선에서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Frente Popular)이 승리하자 CEDA는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스페인 내전(1936-1939)이 발발하자 길 로블레스는 내전 초기 국민파(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세력)를 지지하며 그의 당을 해산하고 국민파에 합류를 독려했다. 그러나 프랑코는 길 로블레스와 같은 전통적인 보수주의 정치가들을 권력에서 배제하고자 했고, 길 로블레스는 내전 기간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내전 종식 후 그는 망명 생활을 이어갔으며, 포르투갈 등지에서 거주했다. 망명 기간 동안 그는 점차 민주주의적 사고에 기울었으며, 프랑코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스페인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했으며, 1970년대 스페인의 민주화 전환기에는 중요한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그의 정치 경력은 스페인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관통하며, 보수주의와 민주주의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