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데 우레아(스페인어: José de Urrea, 1797년 ~ 1849년)는 멕시코의 군인이자 장군으로, 특히 텍사스 혁명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그는 산타 안나 장군 휘하에서 유능한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초기 경력 우레아는 소노라주에서 태어났으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군사 경력을 시작으로 이후 멕시코 독립 후 멕시코군에 복무했다. 그는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했으며, 연방주의자 성향을 띠었다.
텍사스 혁명 1835년 텍사스 혁명이 발발하자, 우레아는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대통령 겸 장군의 휘하에서 중요한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그는 특히 멕시코군의 '해안 캠페인'을 이끌며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1836년 3월, 그는 레푸히오 전투에서 텍사스군을 격파했으며, 이후 골리아드(Goliad) 지역으로 진격하여 제임스 팬딘 대령이 이끄는 텍사스군 주력 부대를 콜레토 전투(Battle of Coleto Creek)에서 포위, 항복시켰다.
그러나 그의 가장 논란이 되는 연관성은 이어진 골리아드 학살(Goliad Massacre)이다. 우레아는 팬딘과 그의 병사들이 항복 후 포로로 잡혔을 때, 그들의 목숨을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산타 안나의 명확한 명령에 따라 거의 400명에 달하는 텍사스 포로들이 처형되었다. 우레아는 이러한 처형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를 반대했음이 알려져 있다. 그는 명령을 이행해야 했지만, 이후 산타 안나와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후 경력 및 사망 텍사스 혁명 이후, 우레아는 멕시코 정치와 군사 문제에 계속 관여했다. 그는 연방주의자로서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산타 안나와 대립하기도 했다. 미국-멕시코 전쟁(1846년~1848년)이 발발했을 때도 그는 참전했지만, 주요한 역할을 맡지는 못했다.
호세 데 우레아는 1849년 멕시코시티에서 콜레라 유행병으로 사망했다.
평가 우레아는 텍사스 혁명에서 가장 유능한 멕시코 장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군사 전략과 전술에 능했으며, 엄격한 규율과 함께 병사들을 잘 이끌었다. 그의 골리아드 학살에서의 역할은 복잡하게 평가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가 학살 자체를 원하지 않았으며, 상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