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삼성(胡三省, 1230년~1302년)은 중국 남송(南宋) 말기에서 원(元) 초기에 걸쳐 생존했던 역사학자이다. 중국의 전통 사학 학파인 절동사학파(浙東史學派)를 대표하는 인물로,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상세한 주석을 단 《자치통감음주》(資治通鑑音注)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생과 가계
호삼성의 초명(初名)은 만손(滿孫)이며, 자(字)는 신지(身之) 또는 경삼(景參), 호(號)는 매간(梅澗)이다. 만년에는 지안노인(知安老人)이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저장성(浙江省) 영해현(寧海縣) 중호촌(中胡村) 출신이다. 형제가 다섯 명이었으며 그중 셋째였다. 그의 이름 '삼성(三省)'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 "나는 하루에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에서 따온 것이다.
생애
1256년(보우 4년), 문천상(文天祥), 육수부(陸秀夫), 사방득(謝枋得) 등과 함께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길주 태화위(吉州泰和尉)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연로함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경원부 자계위(慶元府慈溪尉)를 거쳐 양주 강도승(揚州江都丞)으로 천거되었다.
가사도(賈似道)가 집정하던 시기에는 조봉랑(朝奉郎)이 되어 가사도의 문객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신이 교감한 《자치통감》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후 30년에 걸쳐 《자치통감》에 주석을 다는 작업에 매달렸다.
1276년(경염 원년), 신창(新昌)에 피난하던 중 《자치통감음주》의 원고 97권과 논(論) 10편을 분실하였으나, 다시 다른 책을 구해 작업을 계속하였다. 1279년 남송이 원(元)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후에도 그는 주석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자치통감음주》는 1286년(지원 23년)에 완성되었다. 이후 고향 중호촌으로 돌아갔으며, 1302년 정월에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호삼성의 저서로 《죽소원집》(竹素園集) 100권, 《강동십감》(江東十鑑), 《사성부》(四城賦)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하는 저서는 《자치통감음주》(資治通鑑音注) 294권과 《통감석문변오》(通鑑釋文辯誤) 12권뿐이다.
《자치통감음주》의 주석은 '호주(胡注)'라고도 불리며, 《자치통감》에 대한 주석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호삼성은 지리, 관직, 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상세한 주석을 달았고, 원전의 오류를 지적하는 교정 작업도 수행하였다.
사후 평가
남송을 멸망시킨 원 왕조가 편찬한 《송사》(宋史)와 명 왕조가 편찬한 《원사》(元史) 모두 호삼성에 대한 별도의 열전을 수록하지 않았다. 민국 초기 커샤오민(柯劭忞)이 《신원사》(新元史)를 편찬하면서 유림전(儒林傳)의 마단림(馬端臨) 열전 말미에 53자의 짧은 기록을 남겼다. 이후 중일전쟁 시기에 천위안(陳垣)이 쓴 《통감호주표미》(通鑑胡注表微)를 통해 호삼성의 생애와 학문적 성과가 본격적으로 조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