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오박스(homeobox)는 발생생물학과 분자유전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과학적 개념으로, 약 180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DNA 염기서열을 가리킨다. 이 서열은 동물, 곰팡이, 식물 및 다수의 단세포 진핵생물에서 발견되며, 해부학적 발달 패턴의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 내부에 위치한다. 호메오박스는 단순한 DNA 단편이 아니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중요한 전사인자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핵심 서열이라는 점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호메오박스 유전자가 암호화하는 단백질 산물은 호메오도메인(homeodomain)이라고 불리며, 약 6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도메인으로서 특징적인 단백질 접힘 구조를 공유한다. 이 호메오도메인은 DNA의 특정 염기서열(특히 5'-TAAT-3')에 결합하여 표적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 역할을 수행한다. 호메오도메인 단백질은 초기 배아 발달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과 세포 분화를 조절하므로, 호메오박스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심각한 발달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호메오박스'라는 용어의 기원은 호메오시스(homeosis)에서 유래한다. '호메오시스'는 별개의 신체 부위가 다른 신체 부위로 완전히 대체되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윌리엄 베이트슨(William Bateson)이 만든 용어로, 대표적인 예로는 초파리의 머리에 있는 더듬이가 다리로 대체되는 현상이 있다. 'homeobox'와 'homeodomain'의 'homeo-' 접두사는 이러한 돌연변이 표현형에서 유래되었다.
호메오박스의 존재는 1984년 초파리(Drosophila) 연구를 통해 처음 규명되었다. 월터 게링(Walter Gehring)이 초파리의 '안테나페디아(antennapedia)' 유전자를 식별했고, 이 유전자가 DNA 결합 도메인을 암호화하는 약 180염기쌍의 염기서열을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서열에 '호메오박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윌리엄 맥기니스(William McGinnis)였다. 이후 초파리 외에도 다양한 종의 유전자들이 호메오박스를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계통발생학적 연구를 통해 이러한 유전자가 모든 양측대칭동물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메오박스 유전자는 크게 여러 하위 부류로 나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혹스(Hox) 유전자로, 전후 축을 따라 배아 영역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필수적인 유전자 집단이다. 혹스 유전자는 유전체 내에서 조직화된 클러스터 형태로 존재하며, 클러스터 내 유전자의 선형 순서가 발달 과정에서의 발현 순서와 공간적 순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공선성(colinearity)' 현상을 보인다. 그 밖에도 LIM 유전자, Pax 유전자, POU 유전자 등이 호메오박스 유전자의 주요 하위 부류에 속한다.
인간의 경우 혹스 유전자가 4개의 염색체 클러스터(HOXA, HOXB, HOXC, HOXD)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수많은 호메오박스 유전자가 존재한다. 호메오박스 유전자는 팔다리 발생, 신경계 발달, 안구 구조 형성 등 다양한 발생 과정에 관여하며, 최근 연구에서는 여러 암종에서 호메오박스 유전자의 조절 이상이 발견되는 등 질병과의 연관성도 보고되고 있다. 호메오박스 유전자의 복제는 새로운 신체 분절을 생성할 수 있으며, 이는 분절을 가진 동물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