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오 요시하루 (일본어: 堀尾吉晴, 1542년 ~ 1611년 7월 28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일본의 무장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중요한 가신 중 한 명으로, 이른바 '도요토미 3중로(三中老)'의 한 명으로 꼽히는 다이묘였다.
생애 및 경력
- 초기 생애 및 히데요시 휘하: 호리오 요시하루는 오와리국(尾張国)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하시바 히데요시(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다. 히데요시의 초기 출세 과정에서부터 충실히 보좌하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 전공 및 다이묘 승격: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 과정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 규슈 정벌(九州征伐), 오다와라 정벌(小田原征伐) 등 주요 전역에서 활약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미(近江)국 사와야마(佐和山)성주를 거쳐, 도토미(遠江)국 하마마쓰(浜松)성주로서 12만 석의 영지를 다스리는 다이묘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코마 치카마사(生駒親正),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一氏)와 함께 '도요토미 3중로'로 불리며 히데요시 정권의 중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세키가하라 전투와 이즈모 영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 정국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으로 나뉘자, 호리오 요시하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지하며 동군(東軍)에 가담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전투 직전 부상을 입어 직접 참전하지 못했으나, 그의 아들 호리오 다다우지(堀尾忠氏)가 대신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전투 승리 후, 그 공로로 이즈모(出雲)국 마쓰에(松江)번 24만 석의 다이묘로 봉해졌다. 그는 마쓰에성(松江城) 축조를 시작했으나, 성이 완성되기 전인 1611년에 사망했다.
- 가문의 단절: 그의 아들 호리오 다다우지가 요절했기 때문에, 손자인 호리오 다다하루(堀尾忠晴)가 가문을 이었으나, 다다하루 또한 후사 없이 사망하여 호리오 가문은 단절되었다.
인물 및 평가
호리오 요시하루는 무장으로서의 용맹함뿐만 아니라, 영지 통치와 행정 수완도 뛰어나 히데요시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다. 그는 과묵하고 근면하며 충실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히데요시의 가신 중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