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고에 공방(일본어: 堀越公方)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 간토 지방에 존재했던 공방(公方) 중 하나이다. '공방'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서 쇼군(장군)을 지칭하는 존칭이었으나, 간토 지방에서는 가마쿠라 공방(鎌倉公方)이 설치되면서 그 수장을 공방으로 부르게 되었다. 호리고에 공방은 이즈국(伊豆国) 호리고에(堀越)를 본거지로 삼았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堀越'는 '호리고에'로 읽는 것이 정석이나, 관용적으로 '호리코시 공방'이라고도 읽는다.
조로쿠 원년(1457년),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와 고가 공방(古河公方) 아시카가 시게우지(足利成氏) 사이의 대립이 깊어지자, 요시마사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있던 이복형 아시카가 마사토모(足利政知)를 환속시켜 정식 가마쿠라 공방으로서 간토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마사토모는 가마쿠라에 입성하지 못하고 이즈 호리고에에 머물러 그곳에 어소(御所)를 건설하였다. 이에 정식 가마쿠라 공방이라 불러야 마땅하나, 고가에 있던 아시카가 시게우지의 가마쿠라 공방과 구별하여 '호리고에 공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리고에 공방은 간토 간레이(関東管領)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山内上杉家)과 교토에서 파견된 간토 단다이(関東探題) 등의 보좌를 받았으나, 실권은 교토 막부가 장악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취약했다. 또한 간토의 다이묘들은 고가 공방 측에 충성하는 경우가 많아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닌의 난(応仁の乱, 1467년) 발발 이후 막부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분메이 14년(1482년) 고가 공방과 화해한 후에는 마사토모는 간토의 수장이 아닌 이즈 1국의 영주에 불과하게 되었다.
메이오 원년(1491년) 마사토모가 병사한 후, 후계를 둘러싼 내분이 발생하였다. 차남 아시카가 준도지(足利潤童子)가 선택되었으나, 이복형 아시카가 자차마루(足利茶々丸)에 의해 살해당하고 자차마루가 2대 호리고에 공방으로 취임하였다. 메이오 2년(1493년, 이설 있음), 이마가와 가문(今川氏)의 외척이었던 이세 모리토키(伊勢盛時, 후의 호조 소운)가 호리고에 어소를 침공하였고, 자차마루는 불을 지르고 자결하였다. 이로써 호리고에 공방은 약 36년 만에 멸망하였다.
호리고에 공방은 2대(사실상 1대)에 걸쳐 존속하였으나, 그 혈통은 교토 쇼군가로 이어져 제11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足利義澄)부터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까지 모두 초대 호리고에 공방 마사토모의 혈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