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슈만(Horst Schumann, 1906년 5월 1일 ~ 1983년 5월 5일)은 나치 독일의 의사이자 친위대(SS) 돌격대지도자(SS-Sturmbannführer)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X선을 이용한 불임화 및 거세 생체 실험을 주도한 인물이다.
1906년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할레안데어잘레에서 의사인 아버지 파울 슈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0년 나치당에 입당하였고, 1932년 돌격대(SA)에 가입하였다. 1933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할레 대학병원 외과에서 조수로 근무하였으며, 1934년부터 할레의 국립보건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39년 공군에 징집되어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1939년 10월, 빅토어 브라크의 권유로 나치의 장애인 안락사 계획인 T4 작전(Aktion T4)에 참여하였다. 1940년 1월 뷔르템베르크의 그라페네크 안락사 센터 책임자가 되어 정신질환자들을 일산화탄소 가스로 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같은 해 여름에는 존넨슈타인 안락사 센터로 이동하였다. 또한 슈만은 '14f13 작전'이라는 의사 위원회에 소속되어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다하우 등 여러 강제 수용소에서 허약하거나 병든 수감자들을 선별하여 안락사 센터로 이송하는 작업에 관여하였다.
1941년 7월 28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도착하였다. 1942년 비르케나우 여성 수용소의 30번 블록에 X선 불임화 장비를 설치하고,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X선을 조사하여 생식 능력을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 대상자들은 복부와 생식기 부위에 심각한 방사선 화상을 입었으며, 많은 수가 합병증으로 사망하거나 노동 불가 판정을 받고 가스실로 보내졌다. 슈만은 실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고환과 난소를 외과적으로 적출하여 브레슬라우 대학으로 조직병리학적 검사를 의뢰하였다. 1944년 4월, 하인리히 힘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방사선 불임화는 수술적 거세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낮아 실용적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9월 아우슈비츠를 떠나 작센의 군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1945년 1월 서부전선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1945년 10월 석방되었다. 1946년 글라트베크 시에서 스포츠 의사로 활동하였고, 1949년에는 개인 진료소를 개업하였다. 1951년 사냥 면허 신청 과정에서 신원이 노출되어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해외로 도주하였다. 이후 이집트, 수단을 거쳐 가나로 도피하였으며,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대통령의 보호를 받았다. 1966년 은크루마 정권이 붕괴된 후 가나에서 체포되어 서독으로 송환되었다.
1970년 9월 23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슈만은 T4 작전을 통해 약 14,500명의 장애인 및 정신질환자와 약 800명의 전쟁 포로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아우슈비츠에서의 만행에 대해서도 증언하였다. 그러나 건강 악화(고혈압 등)를 이유로 1972년 7월 29일 석방되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하다 1983년 5월 5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