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호르스트 베셀

호르스트 루트비히 게오르크 에리히 베셀(Horst Ludwig Georg Erich Wessel)은 1907년 10월 9일 독일 제국 베스트팔렌 지역의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1930년 2월 23일 베를린에서 사망한 인물이다. 그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SA) 대원이었다.

베셀은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했으며, 1926년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에 법학을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나 학업을 중단하였다. 1926년 12월 나치당과 SA에 가입한 이후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SA 돌격대 지휘관(SA-Sturmführer)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요제프 괴벨스의 주목을 받아 나치당의 선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9년에는 나치 당가가 될 시 '기를 높이 들라(Die Fahne hoch)'의 가사를 작성하였다.

1930년 1월 14일, 베셀이 세들어 살던 방의 집주인 엘리자베스 잘름이 월세 체납 문제로 그를 퇴거시키려 하면서 갈등이 발생하였다. 잘름은 독일 공산당(KPD)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알브레히트 "알리" 횔러를 비롯한 공산당원들이 베셀의 거처를 방문하여 총격을 가했다. 베셀은 얼굴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치료 중 패혈증이 발생하여 2월 23일 사망하였다. 횔러는 체포되어 살인 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33년 나치가 집권한 후 SA에 의해 교도소에서 끌려나와 불법 처형되었다.

베셀의 사망 이후,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그를 나치 운동의 '순교자'로 격상시키는 대대적인 선전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베셀이 작성한 시는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로 명명되어 나치당의 공식 당가가 되었고, 1933년 나치 집권 이후에는 독일의 국가(國歌)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나치 독일 시기에는 베셀을 기리는 여러 명명(命名)이 이루어졌다. 베를린의 뷜로프플라츠는 호르스트 베셀 광장으로 개칭되었고, 독일 해군의 훈련용 범선에 '호르스트 베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이 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해안경비대의 USCGC 이글호로 운용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무장친위대 제18SS의용기갑척탄병사단 '호르스트 베셀'과 루프트바페 전투비행단 등이 그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셀의 묘지는 훼손되었고, 유해는 발굴되어 소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이르러 그의 묘비는 제거되었으며, 교회 측은 이 장소가 신나치주의자들의 집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묘지를 평탄화하였다. 현재 독일에서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는 연주 및 유포가 금지된 곡이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