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미즈드 2세(Hormizd II)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제8대 샤(왕)로, 대략 서기 302년 또는 303년부터 309년까지 재위하였다. 중기 페르시아어(팔라비어)로는 우르마즈드(Ōhrmazd/Ohrmazd), 페르시아어로는 호르무즈드(Hormuzd)로 표기된다. 그의 이름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중세 페르시아어 형태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신 및 즉위
호르미즈드 2세는 사산 왕조의 왕 나르세스 1세(Narseh I, 재위 293~303)와 그의 왕비 샤푸르둑타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당시 그는 초기 사산 왕조의 왕들이 사용하던 양식의 관을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위 기간의 주요 사건
호르미즈드 2세의 치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몇 가지 주요 사건이 알려져 있다.
첫째, 그의 재위 기간 중 아르메니아 왕국이 트리다테스 3세 치하에서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채택하여 기존의 조로아스터교적 전통에서 이탈하였다. 이는 인접국인 사산 제국과의 관계에 긴장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둘째, 그는 서방에서 가산 왕국(Ghassanid)의 왕을 격파하고 살해하는 등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이 전쟁의 상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제한적이다.
셋째, 그의 치세에는 내부적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크쉐 로스탐(Naqsh-e Rostam)에 남아 있는 암석 부조에는 그가 적을 말 위에서 창으로 찌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부조에 등장하는 적이 파팍이라는 고위 귀족의 가문 표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귀족 세력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그는 아버지 나르세스 치세 때 비교적 평온하게 지내던 마니교도를 박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편으로 초기에는 가혹한 통치자였다가 이후 온화한 통치로 전환했다는 기록이 아랍 역사가 알-타바리의 저술에 전해지고 있다.
죽음과 후계
호르미즈드 2세는 309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정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중 가산 왕국의 군대에 매복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하며, 다른 해석에 따르면 그는 외딴 곳에서 이란 귀족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본다.
그의 사후에는 장남 아두르 나르세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수개월 만에 귀족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귀족들은 호르미즈드 2세의 자식들 중 하나는 눈을 멀게 하고 다른 하나(호르미즈드)는 투옥한 뒤, 그의 아내 이프라 호르미즈드가 임신 중이던 태아인 샤푸르 2세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샤푸르 2세는 성장 후 사산 왕조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왕이 되었다. 한편 투옥되었던 아들 호르미즈드는 이후 탈출하여 로마 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반적 평가
호르미즈드 2세는 아버지 나르세스가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부 영토를 상실한 이후의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으며, 비교적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내부 안정과 서방에서의 군사적 성과를 어느 정도 이루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그의 통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다른 사산 왕조의 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