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군(護軍)은 고려·조선 시대의 관직과 중국 고대의 군사 지휘관 관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자로 '지킬 호(護)'와 '군사 군(軍)'을 쓴다.
한국: 고려·조선의 호군
호군은 고려와 조선의 오위(五衛) 체제에 속한 정4품 무관직이다. 고려 개국 이후 중앙군의 각 영(領)을 지휘하는 직책을 장군(將軍)이라 부르던 것을 충렬왕대(1283년 전후)에 원(元)의 숙위 제도인 케식(怯薛)의 영향을 받아 호군으로 정비하기 시작하였으며, 공민왕 때 장군을 호군으로 공식 개칭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사마(司馬)로 고쳤다가 태종 3년(1403년) 다시 호군으로 환원하였다.
호군의 종류에는 상호군(上護軍), 대호군(大護軍), 호군, 부호군(副護軍), 섭호군(攝護軍) 등이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오위의 실직(實職)으로 태조 1년(1392년)에 12인의 정원을 두었다가 명종 때 8인을 감하였다. 상호군·대호군과 함께 대궐 내 호군청(護軍廳)에서 직숙(直宿)하며, 궁성 4대문 밖의 숙직과 광화문 수호, 도성 내외 순관(巡官)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실제 직무가 없는 산직(散職)으로 변하여 녹봉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중국: 고대 중국의 호군
중국에서는 진(秦) 시대에 호군도위(護軍都尉)라는 관직명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한 고조(漢高祖)는 진평(陳平)을 호군도위로 삼아 제장들을 보호·감독하게 하였다. 이후 삼국 시대부터 서진 시기에 이르러 그 중요도가 정점에 이르렀다. 조조(曹操)는 호군을 중호군(中護軍)으로 고쳐 금군(禁軍)을 관장하게 하고 무관 선발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 직책은 황제의 최측근 중신이나 친인척만이 임명될 수 있는 요직이었다.
삼국 시대의 촉한 명장 조운(趙雲)과 진도(陳到)도 중호군·호군을 맡은 사례가 있으며, 동오의 주유(周瑜)도 이 직책을 역임하였다. 당송(唐宋) 이후 차츰 훈관(勳官)으로만 남게 되었다. 청(淸)나라에서는 팔기(八旗) 정병으로 궁궐 문을 지키는 부대를 호군영(護軍營)이라 불렀다.
그 외
현대 한국어 맥락에서 '호군'은 인터넷 방송 등에서 활동명으로 사용되기도 하나, 이는 동음이의어에 해당한다. 또한 중국 배우 후쥔(胡軍)의 한국어 독음이 '호군'이므로 이 역시 별개의 용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