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겐(保元, ほうげん)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연호(元号) 중 하나이다. 규주(久寿) 3년 4월 27일(율리우스력 1156년 5월 18일),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의 즉위에 따라 개원(改元)되었으며, 1159년 5월 9일 헤이지(平治)로 개원될 때까지 약 3년간 사용되었다. 해당 시기의 재위 천황은 고시라카와 천황과 니조 천황(二条天皇)이다.
연호명 '호겐(保元)'의 출전은 중국 남북조 시대 안지추(顔之推)의 《안씨가훈(顔氏家訓)》에 나오는 구절 「加以砂礫所傷,慘於矛戟,諷刺之禍,速乎風塵,深宜防慮,以保元吉(더욱이 모래와 자갈에 상하는 것이 창과 도끼보다 끔찍하며, 풍자(諷刺)의 재앙은 풍진(風塵)보다 빠르니, 깊이 막고 생각하여 원길(元吉)을 보전해야 한다)」에서 '保元' 두 글자를 인용한 것이다.
호겐 연간의 주요 역사적 사건으로는 원년(1156년)에 발생한 호겐의 난(保元の乱) 이 있다. 이는 황위 승계 문제와 후지와라 가문(섭관가)의 내분이 겹쳐, 고시라카와 천황파와 스토쿠 상황(崇徳上皇)파가 교토에서 무력 충돌한 정변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시라카와 천황 측이 무사(武士)의 힘을 빌린 결과, 이후 일본의 무사 지배 체제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3년(1158년)에는 고시라카와 천황이 니조 천황에게 양위하고 인세이(院政, 상황이 천황을 대신해 정무를 보는 정치 형태)를 개시하였다.
이 밖에도 '호겐(ほうげん)'은 일본어로 방언(方言) 을 뜻하는 일반 명사이기도 하다. 즉, 동일한 한자어 '호겐(호겐)'이 일본의 역사 연호와 언어학 용어로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역사 연호로서의 호겐은 일본 연호 체계에서 76번째에 해당하며, 전후(前後) 연호는 규주(久寿)와 헤이지(平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