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중국 남북조 시대부터 수·당 교체기에 걸쳐 성립된 세시기(歲時記)로, 중국 형초(荊楚) 지역의 연중행사와 세시풍속을 기록한 고전 문헌이다. 형초(荊楚)는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과 후난성(湖南省) 일대, 즉 옛 초(楚)나라 영토에 해당하는 장강(長江) 중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책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중국 고대 세시 기록 가운데 가장 완정(完整)한 것으로 평가되며, 중국 세시기 문헌의 효시로 간주된다.
저자와 성립 과정
이 책의 저작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의 학자 종름(宗懍, 498~561)이 형초 지역의 풍속과 세시를 기록한 원본을 저술하였다. 종름은 난양(南陽) 출신으로 후베이 장링(江陵)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양나라가 멸망한 554년 이후 장안으로 이주한 뒤 이 기록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수나라 말기 또는 당나라 초기(7세기 초)에 두공첨(杜公贍)이 종름의 원본을 개정하고 주석을 붙여 오늘날 전해지는 『형초세시기』의 판본 체계를 확립하였다. 다만 종름의 원본 텍스트와 두공첨의 수정분을 구분하는 것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다.
판본의 전승
현존하는 『형초세시기』의 원본 텍스트는 송나라 시기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들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예문유취(藝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다른 문헌에 인용된 단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여러 판본 사이에 내용의 차이가 존재한다.
내용과 구조
현존하는 『형초세시기』는 음력 정월부터 12월과 윤월에 이르기까지 약 37~49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절기와 세시월령 및 관련 풍물고사를 서술하고 있다. 각 항목마다 세시풍속을 간략히 기술하고 '안어(按語)' 형식으로 당시의 시속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춘절, 원소절, 한식, 단오, 칠석, 백중날, 중양절 등 주요 전통 명절의 유래와 풍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인용한 문헌만 약 90여 종에 이르며, 유교 경전, 불경, 도교 경전, 역사서, 인물 전기, 지리풍속서, 지괴소설, 천문서, 의서, 시부, 유서, 민간속언 및 신화·전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자료를 활용하였다. 또한 '견우직녀' 설화와 백중날(음력 7월 15일)과 같은 불교 공휴일의 기원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초기 문헌 중 하나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영향과 유산
『형초세시기』는 당·송 시대에 걸쳐 중국의 계절과 축제에 관한 저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같은 시기 다른 어떤 고전 문헌보다 많이 인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의 세시 관련 저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대표적 세시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역시 『형초세시기』를 모범으로 삼아 편찬되었다. 또한 이 책은 한국 민속에서 새해 무렵 팥죽을 먹는 풍습의 가장 이른 시기의 참고 문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재 이 책의 최선본(最善本)으로는 일본 학자 모리야 미쓰루(森三樹三郎)가 『중국 고세시기 연구』의 일부로 정리한 판본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