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남 4군 전투(荆南 四郡 戰鬪)는 중국 삼국 시대, 유비(劉備)가 적벽 대전(赤壁大戰) 이후 형주(荊州) 남부의 네 군(郡)인 영릉(零陵), 계양(桂陽), 무릉(武陵), 장사(長沙)를 평정한 전투이다. 시기는 대략 209년으로 추정된다.
배경
적벽 대전에서 조조(曹操)를 격퇴한 후, 유비는 형주 남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당시 손권(孫權)은 주유(周瑜)와 조인(曹仁)이 남군(南郡)에서 1년간 대치하는 동안 유비가 형남 4군을 평정하는 것을 묵인하거나 협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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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전투: 유비가 영릉을 공격하자 태수 유도(劉度)의 아들 유현(劉賢)과 맹장 형도영(邢道榮)이 맞섰으나, 형도영은 제갈량(諸葛亮)의 계략으로 조운(趙雲)에게 전사하고 유현은 장비(張飛)에게 사로잡혀 유도가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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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 전투: 조운이 계양을 공격하자 태수 조범(趙範)이 항복하였다. 조범은 조운과 의형제를 맺고 자신의 형수를 소개해 주려 했으나 조운이 이를 거절하였고, 이후 조범이 거짓 항복을 꾀하다 발각되어 조운에게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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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 전투: 장비가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무릉을 공격하였다. 태수 금선(金旋)이 정예 병사로 맞섰으나 부하 공지(鞏志)에게 살해당하였고, 유비는 공지를 무릉 태수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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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전투: 관우(關羽)가 장사를 공격하여 명장 황충(黃忠)과 격돌하였다. 관우는 황충과의 대결에서 의리를 보여주었고, 이에 감복한 황충은 일부러 빗맞춘 화살을 쏘았다. 장사 태수 한현(韓玄)이 이 광경을 구실로 황충을 의심하여 잡았으나, 부하 위연(魏延)이 이에 분노하여 한현을 죽이고 황충을 구출한 뒤 유비에게 투항하였다.
정사(正史)와의 차이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유비의 형남 4군 평정은 주유와 조인이 남군에서 1년간 전투를 벌이는 기간에 이루어졌다. 또한 위연은 실제로는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부터 이미 그의 부하였으며, 제갈량이 위연의 반골(反骨)의 상을 언급하며 그를 죽이려 했다는 내용은 《삼국지연의》의 소설적 각색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