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공주(顯肅公主, 1464년 ~ 1502년)는 조선 제8대 국왕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녀(嫡長女)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증조부는 세종, 조부는 세조이다. 처음 봉작은 정숙(貞淑)이었으나 이후 현숙(顯肅)으로 개칭되었고, 성종 대에는 소공주(小公主)로 불리기도 하였다.
출생과 가족 관계
현숙공주는 1464년(세조 10)에 태어났다. 부왕 예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숙부인 성종이 즉위하면서, 성종은 예종의 적통 대신 왕위에 올랐다는 인식 때문에 조카인 현숙공주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친동생으로는 제안대군(齊安大君)과 혜순공주(惠順公主)가 있으며, 요절한 인성대군(仁成大君)의 이복여동생이자 월산대군·성종의 사촌 여동생에 해당한다.
혼인 생활
현숙공주는 풍천 임씨(豊川任氏) 풍천위(豊川尉) 임광재(任光載)에게 하가하였다. 임광재는 임사홍(任士洪)의 아들로, 사촌 오라버니 성종의 옹주인 휘숙옹주(徽淑翁主)가 임광재의 동생 임숭재(任崇載)에게 시집가면서 서로 동서지간이 되기도 하였다.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부마 임광재가 끊임없이 여자 문제를 일으키는 등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1492년(성종 23)에는 임광재가 기생 청루월(靑樓月)과의 스캔들을 일으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독살 사건과 후세의 평가
1494년(성종 25), 현숙공주의 시중을 들던 청옥(靑玉)이 공주의 유모 대이(大伊)와 보모 소비(小非) 등이 공주를 독살하려 하였다고 안순왕후에게 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국문 결과 이는 임광재에게 첩을 소개해주면서 잘 보이려던 유모·보모 등이 꾸민 사건으로 판결이 났으며, 관련자 50여 명이 국문을 받는 과정에서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부마는 첩을 둘 수 없다는 국법을 어기고 임광재가 첩을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광재는 축첩이 아닌 진실을 숨기고 변명한 죄를 적용받아 평해(平海)로 귀양을 갔으며, 성종은 배웅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 논의에 대해 현숙공주를 두둔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질투심이 강한 현숙공주가 항상 직언을 하던 유모·보모와 외도를 일삼던 부마 임광재에 대한 불만이 쌓여 꾸민 자작극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사망
임광재는 1495년(연산군 1) 3월 연산군의 명으로 풍천위에 복직되었으나, 그로부터 한 달 뒤인 그해 4월 세상을 떠났다. 현숙공주는 1502년(연산군 8) 5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주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의 『성종실록』과 『연산군일기』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