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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윤

현상윤(玄相允, 1893년 6월 14일 ~ 1950년 9월 15일)은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대한민국의 교육인 겸 사학자로, 호는 기당(幾堂)·소성(小星)·집중(執中)이다.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과(1918년)와 대학원 철학과(1925년)를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조선유학생학우회 기관지인 《학지광》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고, 1917년에는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았다. 또한 최남선이 경영한 《청춘》에 단편소설 여섯 편(《한의 일생》, 《박명》, 《재봉춘》, 《청류벽》, 《광야》, 《핍박》)을 발표하여 근대 단편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하여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추진하고 학생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이끌어 내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20여 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0년 10월 복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출옥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5년 경성대학 예과과장을 지냈고, 1946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되면서 1947년부터 1950년까지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총장 재임 중에도 직접 강의를 하였으며, 공사 구분이 엄격하고 청렴한 행보로 알려져 있다.

학문적 업적으로는 1949년 출간된 《조선유학사》와 1950년 집필된 《조선사상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유학사》는 한국인이 한국의 전통사상에 대해 근대적 체계를 갖추어 쓴 최초의 사상사 저술로 평가된다. 이 저서를 바탕으로 1953년 고려대학교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추서받았으나, 당시 이미 납북된 상태여서 학위증을 직접 수여받지는 못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고려대학교 총장 재임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으며, 이후 황해도 지역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해는 평양시 룡성구역의 재북인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친일 관련 글을 다수 남겼으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되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다만 1940년 창씨개명 권고는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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