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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 전투

현리 전투(縣里戰鬪)는 6·25 전쟁(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16일부터 5월 22일까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조선인민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중공군의 춘계 제2차 공세(5월 공세)의 일환으로 발생하였으며, 대한민국 국군이 큰 피해를 입은 패전으로 기록된다.

배경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 제1차 공세가 유엔군의 방어에 막히자,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怀)는 전략을 전환하여 동부 전선의 대한민국 국군 제3군단이 방어하는 현리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중공군 제9병단(쑹스룬 지휘)과 조선인민군 제5군단 등 3개 군단 규모의 병력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 경과

1951년 5월 16일, 중공군과 조선인민군은 대한민국 국군 제3군단(군단장 유재흥 소장) 예하 제3사단과 제9사단이 방어 중인 현리 지역을 공격하였다. 중공군은 국군 제3군단의 좌·우측면을 동시에 압박하면서 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여 3군단을 포위하였다. 포위 상황에서 군단장 유재흥은 부군단장을 대리로 지정한 후 항공기편으로 군단 사령부를 이탈하였다. 이후 3군단은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으며, 각급 지휘관들이 지휘를 포기하고 무질서하게 후퇴하면서 병력과 장비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였다.

결과 및 피해

이 전투로 국군 제3군단은 2만 2천여 명의 병력 가운데 약 4천 명의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를 기록하였고, 이후 복귀율은 70% 수준에 그쳤으며 장비의 약 70%를 상실하였다. 전투 결과 대한민국 국군은 현리에서 하진부리까지 후퇴하였고, 제3군단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여 이후 해체되었다. 한국 역사에서 임진왜란의 칠천량 해전, 병자호란의 쌍령 전투와 함께 '3대 패전'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의의 및 평가

현리 전투는 6·25 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이 겪은 가장 큰 패전 중 하나로 평가된다. 패전의 원인으로는 중공군의 압도적인 병력 우세와 더불어, 지휘관의 전장 이탈로 인한 지휘 체계 붕괴, 부대 간 협조 부재 등이 지적된다. 당시 군단장 유재흥의 행동에 대해서는 '작전회의 참석'을 위한 이탈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백선엽 장군의 저서 《밴 플리트 장군과 한국군》에서는 유재흥이 작전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등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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