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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 (조선)

현릉(顯陵)은 조선 제5대 국왕 문종(文宗, 1414~1452)과 그의 왕비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 1418~1441)의 능이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성 배경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맏아들로, 1421년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450년 왕위에 올랐다. 재위 2년 4개월 만인 1452년에 승하하자, 수양대군(세조),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 대신과 풍수지관들이 현지를 답사하여 능지를 정하였다. 처음에는 세종의 영릉(英陵) 옆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땅을 파는 과정에서 물이 솟아나 태조의 건원릉(健元陵)과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조성되었다.

능의 형식

현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같은 능역(능 구역) 안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왕과 왕비의 능침을 서로 다른 언덕에 마련한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서쪽(왼쪽) 언덕이 문종의 능, 동쪽(오른쪽) 언덕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능제는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랐다.

문종의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설치되었으며, 병풍석의 무늬는 이전 왕릉에서 사용되던 영저(금강저)와 영탁(방울) 대신 구름무늬로 바뀌었다. 혼유석 받침대인 고석의 수량도 4개로 줄어들었다. 능침 상계에는 봉분과 석양·석호, 중계에는 장명등·문석인·석마, 하계에는 무석인과 석마가 배치되었다. 현덕왕후의 능침은 문종의 능침과 같은 상설(床設)로 조성되었으나 병풍석은 생략되었다.

현덕왕후의 폐위와 복위

현덕왕후 권씨는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1431년 세자궁에 들어가 1437년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441년 원손(훗날 단종)을 출산하였으나 산후병으로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경기도 안산에 안장되어 소릉(昭陵)이라 불렸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후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세조 즉위 후 단종 복위 사건에 현덕왕후의 친정어머니와 남동생이 연루되면서, 1457년(세조 3) 현덕왕후는 추폐(追廢)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소릉도 파헤쳐져 물가로 옮겨졌다. 이후 1512년(중종 7)에 복위되어 이듬해인 1513년(중종 8) 봄, 문종의 현릉 동쪽 언덕으로 천장(遷葬)되었다. 현덕왕후가 세상을 떠난 지 72년 만에 왕의 곁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때부터 소릉이라는 능호를 버리고 문종의 능과 합하여 현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도비의 폐지

현릉 이후부터는 왕릉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우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임금의 치적이 국사(실록)에 실려 있으므로 굳이 별도로 세울 필요가 없다는 논의 때문이었다. 다만 1775년(영조 51)에 표석(表石)이 건립되었는데, 전면에는 "조선국문종대왕현릉현덕왕후부좌강(朝鮮國文宗大王顯陵顯德王后祔左岡)"이라 새겨져 있다.

현황

현릉이 속한 구리 동구릉 전체는 1970년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국가유산청 조선왕릉 동부지구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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