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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르 디스펜서

헨리 르 디스펜서(Henry le Despenser, 1341년경~1406년 8월 23일)는 14세기 잉글랜드의 귀족이자 노리치(Norwich)의 주교였다. 그는 '전투하는 주교(Fighting Bishop)'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는 1381년 농민 반란(Peasants' Revolt)을 동앵글리아(East Anglia) 지역에서 진압하고 노스월샴 전투(Battle of North Walsham)에서 반란군을 격파한 공적에서 비롯되었다.

출생과 가문: 헨리 르 디스펜서는 에드워드 르 디스펜서(Edward le Despenser, 1310~1342)와 앤 페러스(Anne Ferrers) 사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342년 반(Vannes) 공성전에서 전사했다. 그의 가문인 르 디스펜서(le Despenser) 가문은 프랑스 북동부 고미에쿠르(Gomiécourt) 영주 가문에서 기원했다. 증조부 휴 르 디스펜서(Hugh le Despenser, 1st Earl of Winchester)와 조부 휴 디스펜서 2세(Hugh Despenser the Younger)는 에드워드 2세의 총신이었으나, 1326년 이사벨라 왕비의 반란 이후 처형되었다. 헨리의 외할머니 엘리노어 드 클레어(Eleanor de Clare)는 에드워드 1세의 손녀였다.

초기 생애와 경력: 1353년(11세)에 란다프(Llandaff)의 사제(canon)가 되었고, 이듬해 솔즈베리 대성당의 사제직을 얻었다. 19세에 보즈워스(Bosworth)의 교구장이 되었으며, 1361년 2월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민법을 수학했다. 1362년 12월 17일 서품되었고, 1364년 4월 20일까지 란다프의 부제독(archdeacon)이 되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서 교황 우르바노 5세(Pope Urban V)를 위해 밀라노와의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리치 주교: 1370년 4월 3일 교황 칙서에 의해 노리치 주교로 임명되었고, 4월 20일 로마에서 축성되었다. 1370년 7월 12일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교회령(spiritualities)을, 8월 14일 왕으로부터 세속령(temporalities)을 인정받았다.

농민 반란 진압(1381년): 1381년 농민 반란이 노퍽(Norfolk) 지역으로 확산되자, 헨리 르 디스펜서는 루틀랜드(Rutland)의 벌리(Burley) 영지에서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무장하여 귀환했다. 단 8기의 창기병(lances)과 소수의 궁병으로 출발했으나, 노스월샴에 도착할 때까지 상당한 병력을 모았다. 그곳에서 참호와 임시 방어 시설을 갖춘 반란군을 직접 돌격하여 제압했으며, 반란군 지도자 제프리 리스터(Geoffrey Litster)를 생포하여 교수형·내장적출·사지절단(hanged, drawn and quartered)의 형벌에 처했다. 이 진압 과정에서의 가혹함으로 인해 노퍽 지역에서 큰 반감을 샀으며, 이듬해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다.

데스펜서의 십자군(1383년): 1378년 교황 우르바노 6세와 대립교황 클레멘스 7세 간의 서방 교회 분열(Western Schism)이 발생한 가운데, 교황 우르바노 6세는 헨리 르 디스펜서에게 플랑드르에서 대립교황 지지 세력을 상대로 십자군을 지휘하도록 임명했다. 1382년 12월 리처드 2세가 십자군 선포를 명령했고, 1383년 2월 의회는 그에게 보조금을 할당했다. 1383년 5월 칼레에 상륙한 잉글랜드군은 그라블린(Gravelines), 됭케르크(Dunkirk) 등 여러 도시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이프르(Ypres) 공성전에서 8주간의 포위 끝에 실패했고, 프랑스 군대의 접근으로 인해 철수했다. 귀국 후 의회에서 탄핵(impeachment)을 당했으며, 주교의 세속령은 몰수되었다가 1385년에 반환되었다.

이후 생애: 1385년 리처드 2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동행했다. 이후 노리치 교구 내에서 롤라드(Lollardy)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1399년 헨리 볼링브로크(훗날 헨리 4세)가 상륙했을 때 리처드 2세에게 충성했으며, 요크 공작이 항복한 후에도 굴복을 거부하여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400년 1월 주현절 반란(Epiphany Rising)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으나, 1401년 헨리 4세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사망과 유산: 1406년 8월 23일 노퍽의 노스엘름햄(North Elmham)에서 사망했으며, 노리치 대성당의 제단 앞에 묻혔다. 그의 묘에는 황동 비문이 있었으나 이후 소실되었다. 노리치 대성당에는 그가 의뢰한 것으로 추정되는 '데스펜서 제단 장식판(Despenser Reredos)'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최후를 묘사한 작품으로 현재 대성당의 성 루카 경당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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