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인 연대기(Hainish Cycle)는 미국의 SF·판타지 작가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1929–2018)이 창작한 과학소설 작품군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이 명칭은 작가가 공식적으로 정한 시리즈 타이틀이 아니라, 헤인(Hain)이라는 행성에서 기원한 인류가 여러 별에 퍼져 살아가는 '헤인 우주(Hainish universe)'라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르 귄의 소설들을 독자와 평론가들이 임의로 분류해 부르는 개념이다.
개요
헤인 연대기는 수백 년 전 헤인 행성의 인류가 다양한 항성계의 식민 행성에 퍼져 있었으나, 이후 성간(星系間) 교류가 오랜 기간 단절되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세계관에서 인류는 지구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고대 헤인인들이 다양한 행성에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적응시킨 후손들로 설명된다. 각 행성의 인류는 서로의 존재를 오래도록 잊고 살아가다가, 이후 다시 접촉하여 외교 관계를 맺고 연합체를 구축해 나간다. 이 연합체는 초기에는 '만유 행성 연맹(League of All Worlds)'으로, 후기에는 '에쿠멘(Ekumen)'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에쿠멘'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이 사는 세계'를 뜻한다.
르 귄은 이 배경을 활용하여 인간의 진화, 사회 구조, 젠더, 문화 간 접촉 등의 인류학적·사회학적 주제를 탐구했다.
주요 작품
헤인 연대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장편소설과 단편집으로는 다음이 있다.
- 『로캐넌의 세계』(Rocannon's World, 1966)
- 『망명의 행성』(Planet of Exile, 1966)
- 『환상의 도시』(City of Illusions, 1967)
-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 — 네뷸러상(1969) 및 휴고상(1970) 수상
- 『나무의 세계』(The Word for World Is Forest, 1972/1976) — 휴고상(1973) 수상
-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An Ambiguous Utopia, 1974) — 휴고상(1975) 및 네뷸러상(1974) 수상
- 『말하기』(The Telling, 2000) — 로커스상(2001) 수상
이 외에도 『바다의 어부』(A Fisherman of the Inland Sea, 1994),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Four Ways to Forgiveness, 1995) 등의 단편집과 여러 단편이 이 세계관에 포함된다.
작가의 관점
르 귄 자신은 '헤인 연대기'라는 호칭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그것들은 연대기나 사가가 아니다. 그것들은 일관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점도 있지만, 매우 모호한 연결점도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작품 간 내부 연대기(타임라인)가 일관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며, 발표 순서와 이야기 속 시간 순서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언급했다.
세계관의 주요 요소
헤인 연대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술적·설정적 요소로는 다음이 있다.
- 앤서블(ansible): 서로 떨어진 세계 간에 즉시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르 귄이 창안한 개념이다. 이후 오슨 스콧 카드, 엘리자베스 문, 버너 빈지 등 다른 SF 작가들도 이 용어를 차용하여 사용했다.
- NAFAL 항해: '거의 빛과 같은 속도(Nearly As Fast As Light)'라는 이름의 우주 비행 방식으로, 항성 간 이동에 수년이 걸리지만 탑승자 입장에서는 시간 팽창으로 인해 불과 수주에서 수개월의 체감 시간이 걸리는 방식이다.
- 성간 통신망의 구축: 초기의 행성 연맹과 후기의 에쿠멘 체계를 통해 성간 문명의 재구축 과정을 묘사한다.
평가와 의의
헤인 연대기는 르 귄의 대표적 SF 작품군으로, 특히 『어둠의 왼손』은 성별이 없는 종족 '게센인'을 설정하여 젠더와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 작품으로 유명하다. 『빼앗긴 자들』은 무정부주의적 사회 실험을 다루며 정치·철학적 사유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이 연대기의 작품들은 SF 문학의 인류학적·사회학적 접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르 귄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축의 하나로 여겨진다.
2017년 미국의 리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에서 르 귄의 헤인 연대기 관련 장편소설과 단편 전체를 두 권으로 묶어 『The Hainish Novels & Stories』로 출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