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 1900년 4월 5일 ~ 1985년 9월 30일)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그래픽 디자이너, 화가, 사진가, 조각가, 아트 디렉터, 환경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이다. 20세기 시각 디자인과 현대 타이포그래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바이어는 오스트리아 북부 하크암하우스루크(Haag am Hausruck)에서 태어나, 린츠(Linz)에서 예술가 게오르크 슈미트함머(Georg Schmidthammer) 밑에서 도제 수련을 받았다. 이후 다름슈타트 예술가 식민지(Darmstadt Artists' Colony)에서 공부하던 중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바우하우스 선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Bauhaus)에 입학하여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파울 클레(Paul Klee),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 등에게 사사받았다. 1925년 그로피우스는 바이어를 바우하우스의 인쇄 및 광고 부서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바이어는 바우하우스 시절인 1925년, 대문자와 소문자를 통합한 단일 문자 체계인 '유니버설 타입페이스(Universal Typeface)'를 디자인하였다. 이는 기하학적 형태의 산세리프체로, 대문자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 특징이다. 바이어는 두 개의 알파벳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기술 사회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며 기능적 관점에서 이 서체를 고안하였다. 이 서체는 당시 실제 활자로 주조되지는 않았으나, 이후 ITC 바우하우스, 아키타입 바이어(Architype Bayer) 등 여러 디지털 복각판이 제작되었다. 바이어는 바우하우스 출판물에 소문자와 산세리프체만을 사용하는 절제된 시각 스타일을 정착시켰다.
1928년 바이어는 바우하우스를 떠나 베를린에서 보그(Vogue)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였고, 도를란트(Dorland) 광고 대행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며 포토몽타주 표지 작업을 선보였다. 1937년 나치 정권이 '퇴폐 예술(Entartete Kunst)' 전시회에 그의 작품을 포함시키자, 바이어는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를 거쳐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같은 해, 그는 발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1918-1928' 전시회를 공동 기획하여 바우하우스 사상을 미국 디자인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바이어는 1946년 콘테이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Container Corporation of America, CCA)의 회장 월터 페프케(Walter Paepcke)의 초청으로 콜로라도주 애스펀(Aspen)으로 이주하였다. CCA의 디자인 컨설턴트 및 디자인 부서 의장을 역임하며 '위대한 서양인의 아이디어(Great Ideas of Western Man)' 광고 캠페인을 비롯한 기업 디자인 전반을 총괄하였다. 또한 애스펀 연구소(Aspen Institute) 캠퍼스의 환경 디자인과 건축 설계에 참여하였고,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International Design Conference)의 공동 창립자로서 애스펀을 문화적 중심지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바이어는 1953년 CCA를 위해 '세계 지리-그래픽 아틀라스(World Geo-Graphic Atlas)'를 제작하였는데, 이는 지도 제작의 정확성과 타이포그래피, 데이터 시각화를 통합한 선구적인 정보 디자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1959년에는 영어를 위한 음성 기반 알파벳 '포네틱 알파벳(fonetik alfabet)'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이후 아틀란틱 리치필드 컴퍼니(Atlantic Richfield Company, ARCO)의 아트 및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기업 미술 컬렉션을 조성하고, 로스앤젤레스 ARCO 플라자(현 시티 내셔널 플라자)의 쌍둥이 빌딩 사이에 설치된 조각 분수 '더블 어센션(Double Ascension)'을 설계하였다. 그의 야외 조각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린츠(Lentos 미술관 앞), 워싱턴주 켄트의 밀 크릭 캐니언 어스웍스(Mill Creek Canyon Earthworks) 등 여러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
바이어는 1979년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펠로우로 선출되었으며, 1985년 캘리포니아주 몬테시토(Montecito)에서 8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하버드 대학 미술관, 쿠퍼 휴잇 스미소니언 디자인 박물관, 덴버 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9년 애스펀 연구소에는 바이어의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레스닉 헤르베르트 바이어 연구 센터(Resnick Center for Herbert Bayer Studies)'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