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쿠터(Hermann Kutter, 1863년 9월 12일 ~ 1931년 3월 31일)는 스위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생애 및 학문적 배경
1863년 9월 12일 스위스 베른에서 피에티즘(경건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바젤과 베를린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1886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87년 피넬츠(Vinelz)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898년부터 1926년까지 취리히 노이뮌스터(Neumünster) 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였다. 1896년 신학 학위(Licentiate in Theology)를 취득하였으며, 1923년 취리히 대학교로부터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학 사상 및 활동
쿠터는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dt)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블룸하르트가 주장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종말론적 대망 사상을 사회주의적 진보관과 결합시켰다.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구"로 보았으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종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쿠터 자신은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복음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지도 않았다.
레온하르트 라가츠(Leonhard Ragaz)와 함께 스위스 기독교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의 창립자로 평가된다. 주요 저서로는 《직접적인 것, 인류의 문제》(Das Unmittelbare, eine Menschheitsfrage, 1902), 《그들은 해야 한다》(Sie müssen, 1904), 《우리 목사들》(Wir Pfarrer, 1907) 등 11권의 저서가 있다. 그의 신학은 신 중심적(theocentric) 성격이 강하여, 이후 칼 바르트(Karl Barth),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등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신학(dialectical theology)의 길을 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입장 변화
제1차 세계대전 중 쿠터는 독일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로 인해 평화주의자였던 라가츠와 결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쿠터 자신이 기독교 평화주의 입장을 수용하였다.
사망
1931년 3월 31일 스위스 장크트갈렌에서 사망하였다.
참고 문헌
- Thomas K. Kuhn, "Hermann Kutter",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HLS), 2008.
- Timothy J. Gorringe, Karl Barth: Against Hegemony, Oxford University Press,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