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 (憲宗, 1827~1849)
조선의 제24대 국왕. 재위 기간은 1834년~1849년이다. 이름은 이환(李烉),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성황제(成皇帝)로 추존되었다.
생애
1827년(순조 27) 7월 18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익종·문조로 추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 신정왕후 조씨이다. 1830년 아버지 효명세자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고, 같은 해 9월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834년 순조가 승하하자 8세의 나이로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이는 조선 국왕 중 가장 어린 나이의 즉위였다. 나이가 어렸으므로 할머니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6년간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다.
치세
헌종의 재위 기간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아래 안동 김씨가 정국을 주도하였고, 이후 헌종의 외가인 풍양 조씨가 세력을 확장하며 두 외척 세력이 공존·경쟁하는 양상을 띠었다.
1841년(헌종 7) 친정을 시작한 헌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정조를 모범으로 삼아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풍양 조씨 인물들을 특지(特旨)로 등용하였고, 정조의 장용영을 본따 총위영(摠衛營)을 설치하여 친위 군사력을 확보하려 하였다. 또한 1846년 초계문신제를 부활시켜 근신(近臣)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며, 1848년에는 《삼조보감(三朝寶鑑)》을 찬집하게 하고 각 도의 제방과 저수지를 정비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그러나 세도 가문의 견제로 실질적인 국정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주요 사건
천주교 박해: 헌종 대에는 두 차례의 대규모 천주교 박해가 발생하였다. 1839년(헌종 5)의 기해박해(己亥迫害)에서는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와 정하상, 유진길 등 많은 천주교 신자가 처형되었다. 순원왕후는 한글로 척사윤음(斥邪綸音)을 내려 백성들에게 천주교를 경계할 것을 경고하였다. 1846년(헌종 12)의 병오박해(丙午迫害)에서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
모반 사건: 1836년(헌종 2) 남응중(南膺中)이 정조의 이복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를 추대하려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1844년(헌종 10)에는 민진용(閔晉鏞) 등이 같은 은언군의 손자 이원경(회평군)을 추대하려다 실패하였다.
이양선 출몰: 재위 말년인 1848년부터 서양의 이양선(異樣船)이 조선 해안에 빈번히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며 민심을 불안하게 하였다.
삼정 문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문란이 극에 달하여 백성들의 민생이 피폐해졌고,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발생하는 등 자연재해도 빈번하였다.
최후
1849년(헌종 15) 6월 6일,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향년 21세)의 나이로 후사 없이 승하하였다. 헌종의 죽음으로 정조의 직계 자손이 단절되었다. 이후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결정으로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손자인 이원범(철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가족 관계
- 부: 문조(익종, 효명세자)
- 모: 신정왕후 조씨
- 정비: 효현왕후 김씨(안동 김씨, 1828~1843)
- 계비: 효정왕후 홍씨(남양 홍씨, 1831~1904)
- 후궁: 경빈 김씨, 정빈 윤씨, 숙의 김씨
- 자녀: 옹주 1명(숙의 김씨 소생, 조졸)
능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한 경릉(景陵)이다.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 세 분의 능이 한 언덕에 나란히 조성된 동원삼봉릉(同原三奉陵) 형태로, 이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한 형식이다.
평가
헌종은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세도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성장하였고, 친정 이후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나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군주로 평가된다. 《헌종실록》은 다른 실록에 비해 내용이 매우 부실하고 분량이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