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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의 상도

헌정의 상도(憲政の常道)는 일본 제국 시기에 일시적으로 운용되었던 정치적 관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는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이상으로 삼아, 중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원내 제1당이 내각을 구성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불문율을 의미하였다.

기원과 배경

'헌정의 상도'라는 표현 자체는 제1차 호헌 운동(1924년) 당시 사용된 슬로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번벌(藩閥) 출신 인사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였으며, 주로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중의원 다수파와 귀족원 다수파가 제휴하여 번갈아 정권을 담당하는 형태를 구상한 하라 다카시(原敬) 등 학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였다.

성립과 전개

1924년 1월, 내각총리대신 기요우라 게이고(清浦奎吾)가 육군·해군·외무대신을 제외한 모든 각료를 귀족원 의원으로 구성하자, 중의원은 이를 '특권 내각'이라 비판하며 헌정회·입헌정우회·혁신구락부 등 3당이 호헌 3파를 결성하였다. 이후 치러진 제1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호헌 3파가 압승하였고,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는 헌정회 총재 가토 다카아키(加藤高明)를 신임 총리대신으로 추천하였다. 이로써 일본 최초로 총선 결과에 따라 야당 대표가 조각하는 사례가 만들어졌으며, 기요우라 내각은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붕괴하였다(제2차 호헌 운동).

가토 내각은 1925년 보통선거법을 제정하였고, 이후 중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원내 제1당이 내각을 구성해야 하며 내각이 붕괴하면 야당이 새롭게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관행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는 번벌 중심의 내각 및 원로의 추천에 의해 구성되던 기존 내각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이것이 곧 '헌정의 상도'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내각 총사퇴의 조건은 내각의 실정(失政)에 한정되었으며, 총리 사망 등으로 인한 궐위에 따른 총사퇴의 경우에는 야당에게 정권이 승계되지 않았다.

이 관례에 따라 입헌정우회와 입헌민정당이 거대 양당으로 군림하며 정당 내각을 번갈아 구성하였다.

쇠퇴와 소멸

보통선거 실시 이후 정당들은 막대한 선거 자금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재계와 강하게 결합하였고, 이는 다양한 부패 사건을 초래하였다.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확산되고 청년 장교들 사이에서 정당정치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1932년 5·15 사건으로 당시 총리대신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가 암살되면서 정당 내각 자체가 붕괴하였다. 이누카이의 후임으로 퇴역 해군 대장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대명강하(대천황의 명령에 의한 총리 지명)가 내려지면서 헌정의 상도는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였고, 이후 군부의 발언권이 크게 확대되었다.

전후의 영향

일본국 헌법 시행 이후 천황의 대명강하를 통해 총리대신이 취임하는 사례는 사라졌으며, 1947년부터 총리대신은 국회의원 투표에 따라 선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헌법 시행 초기에는 구 관행이 일부 지속되기도 하였다. 1955년 55년 체제가 시작된 이후로는 자유민주당의 장기 집권이 고착되어 사실상 정권 교체 가능성은 낮아졌다.

1993년 비자민·비공산 연립 정권이 출범하면서 원내 제1당이 아닌 정당에서 총리대신이 선출된 사례가 발생하였고, 2008년 후쿠다 야스오 내각 붕괴 당시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는 "헌정의 상도에 따라 야당에게 정권을 넘길 것"을 주장하며 이 개념을 정치적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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