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웰린 압 그리피드 (웨일스어: Llywelyn ap Gruffydd, 1223년경 ~ 1282년 12월 11일)는 마지막 웨일스인 웨일스 공이자 사실상 독립 웨일스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그는 종종 '마지막 허웰린(Llywelyn the Last)'으로도 불리며, 잉글랜드의 웨일스 정복에 맞서 웨일스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의 죽음은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완전히 병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생애 초반 및 권력 장악
허웰린은 1223년경 그리피드 압 허웰린 파우르(Gruffydd ap Llywelyn Fawr)와 세나나(Senan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 허웰린'으로 알려진 허웰린 파우르였다.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 이후, 허웰린은 형제인 오와인 고흐(Owain Goch) 및 다피드(Dafydd)와 함께 북 웨일스의 영토를 상속받았으나, 점차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다른 형제들을 제압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1255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봉기한 후, 웨일스 내에서 그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웨일스의 지배자
1250년대 중반부터 허웰린은 웨일스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변 웨일스 영주들을 통합했다. 1267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와 몽고메리 조약(Treaty of Montgomery)을 체결하여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그가 웨일스의 독립적인 통치자이자 웨일스 전역에 대한 종주권을 가진 존재임을 잉글랜드가 인정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시기에 허웰린은 웨일스 공으로서 웨일스 법을 기반으로 하는 행정 체계를 구축하고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를 운영했다.
잉글랜드와의 갈등 및 몰락
그러나 헨리 3세의 뒤를 이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에 대한 강력한 지배를 추구했다. 허웰린은 에드워드 1세에게 여러 차례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웨일스 내에서 잉글랜드의 영향력에 저항했다. 이는 두 군주 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1277년, 에드워드 1세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웨일스를 침공하여 허웰린을 제압하고 애버콘위 조약(Treaty of Aberconwy)을 강요했다. 이 조약으로 허웰린의 영토와 권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웨일스인들의 잉글랜드 지배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고, 1282년 허웰린의 동생 다피드의 봉기를 시작으로 웨일스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허웰린은 반란에 합류하여 잉글랜드에 맞섰으나, 1282년 12월 11일 킬메리(Cilmeri) 근처에서 잉글랜드 군대와의 전투 중 전사했다. 그의 죽음으로 웨일스의 독립적인 저항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으며, 이듬해인 1283년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를 완전히 정복했다.
유산
허웰린 압 그리피드는 웨일스 독립의 마지막 상징이자 국가적 영웅으로 기억된다. 비록 그의 죽음으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흡수되었지만, 그의 저항은 웨일스 민족주의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킬메리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웨일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