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배(許雄培, 1928~1997)는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許蔿)의 손자이자, 북한 출신의 반김일성 운동가이다. 소련 유학 시절 김일성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망명한 후 이름을 허진(許眞)으로 개명하였다.
생애
허웅배는 1928년(또는 1929년)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교수형으로 순국한 의병장 허위(왕산)이며, 아버지는 허위의 아들 중 한 명이다. 허위 사후 가족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이주하였고, 허웅배는 만주에서 성장하였다. 하얼빈의 대도관 국민고등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광복 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허웅배는 조선인민군에 참전하여 소좌(少佐) 및 선무공작대장으로 복무하였다. 1952년 북한 정부의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소련 모스크바의 국립영화대학(ВГИК) 시나리오과에서 수학하였다.
망명 사건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한 사건은 허웅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57년 11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재소 조선유학생 대회에서 허웅배는 김일성 개인숭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단상에서 끌려내려진 후 도주하였고, 북한 대사관에 자진 귀환하였으나 구금되었다. 이후 대사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다시 탈출하여 소련 당국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1958년, 허웅배의 망명에 동조하여 같은 영화대학의 유학생 7명(한대용, 리경진, 김종훈, 정린구, 최국인, 양원식, 리진황)이 추가로 집단 망명하였다. 이 사건은 '1958년 북한 유학생 집단 망명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허웅배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제 참사람이 되겠다는 뜻으로 같은 이름 '진'(眞)을 쓰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따라 허웅배는 허진(許眞), 한대용은 한진(韓眞), 리경진은 리진(李眞) 등으로 개명하였다. 이들은 이후 '8진(八眞)'으로 불리게 되었다.
망명 이후 활동
망명 후 허웅배(허진)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지에서 생활하였으며, 이후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재소 고려인 협회 회장과 고려일보(옛 레닌기치) 회장을 역임하였다.
허진은 필명 '임은(林隱)'을 사용하여 1982년 일본에서 『북조선왕조 성립 비사: 김일성 정전』(북한 김일성왕조비사)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독재 체제를 비판한 내용으로,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할아버지 허위의 고향인 경북 선산군 임은동(林隱洞)에서 필명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에는 정추 등과 함께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결성에 참여하였다.
사망
허진은 1997년 1월 5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
허웅배는 구한말 의병장 허위(1854~1908)의 손자이다. 허위는 1907년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서울 진공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허위의 후손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와 중앙아시아 등지로 흩어져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