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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정치인)

허영호(許永鎬, 1900년 12월 21일 ~ 1952년 1월 30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정치인이다. 법명은 경호(鏡湖), 호는 현주(玄州)이며, 다른 이름으로 허윤(許允)을 사용하였다. 일본식 이름으로는 덕광윤(德光允), 덕광익(德光翼)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출생과 초기 활동

허영호는 1900년 12월 21일 경상남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동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범어사 산하 명정학교(明正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동래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양대학 문화학과에서 수학하였고, 귀국 후에는 동래 지역에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6년 문예잡지 《평범(平凡)》을 창간하였으며, 1928년 신간회 동래지회 전형위원과 본부 대표위원, 정치문화부 총간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조선청년총동맹 경남도연맹 대회 집행부 부의장에 선임되는 등 부산 지역 사회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930년 두 번째 일본 유학길에 올라 다이쇼대학(大正大學) 불교학과에서 수학하였다.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 서무부 간사로 활동하는 등 일본에서도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친일 활동

1932년 다이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이후에는 불교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겸 학감,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장, 조계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친일 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불교신(佛敎新)》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아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신앙보국, 징병제 실시 등을 주장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으로 위촉되었고, 1942년에는 '대동아전쟁과 일본의 사명'을 주제로 한 시국 순회강연에 참여하였다. 1943년에는 육군특별지원병 사기양양 대강연회에서 조선불교 대표 자격으로 강연을 하였다.

해방 이후와 정치 활동

광복 이후 1945년 9월 혜화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고, 1946년 혜화전문학교가 동국대학으로 개명되자 초대 학장(현재의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1946년 반탁국민총동원위원회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9년 1월 13일 실시된 제헌 국회의원 경상남도 부산부 갑 선거구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1950년 6월 부산시 갑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납북과 사후 평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13일 납북되었으며, 북한의 기록에 따르면 1952년 1월 30일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 참가를 근거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나, 2010년 그의 친일 행적이 확인되면서 국가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하였다. 또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기타 부문,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종교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허영호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력과 일제강점기 후반의 친일 행적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해방 이후에는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한 복합적인 이력의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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