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생애 및 혁명 활동 허룽은 후난성 창더시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20세기 초 중국의 혼란기에 그는 도적떼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점차 혁명 사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에 가담하여 북벌에 참여했으며, 이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에는 저우언라이, 주더 등과 함께 난창 봉기를 주도하여 중국 공산당 무장 투쟁의 초석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군과 대장정 난창 봉기 실패 후, 그는 후난-후베이 국경 지역에서 홍군 제2방면군을 조직하여 지휘했으며, 이후 대장정(長征)에 참여하여 서방면군을 이끌었다. 그의 부대는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투쟁하며 공산당의 생존에 기여했다. 중일 전쟁과 국공내전 기간 동안에도 주요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혁명 전쟁의 승리에 공헌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인 1955년에는 인민해방군 원수로 임명되었고,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가체육운동위원회 주임 등 요직을 역임하며 신생 국가의 건설에 참여했다. 그는 특히 체육 분야의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문화대혁명과 사망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그는 린뱌오 등의 모함으로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박해를 받았다. 그는 1969년 6월 9일 옥중에서 사망했으며, 사후 1970년대 말에 덩샤오핑의 주도로 명예가 회복되었다. 허룽은 중국 공산당의 초기 무장 투쟁을 이끌고 인민해방군 건설에 큰 기여를 한 혁명가이자 군사 전략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