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소·부곡(鄕·所·部曲)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전기까지 존속했던 한국의 특수 행정 구역이다. 일반 군현(郡縣) 체제와 달리 하층 계급의 주민이 거주하거나 특정 생산 기능을 담당했던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그 존재가 두드러졌다.
정의와 구성
향(鄕)·소(所)·부곡(部曲)은 각각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 향(鄕): 주로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주민이 거주하던 특수 행정 구역. 규모가 현(縣)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설치되었다.
- 소(所):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을 생산하던 특수 행정 구역.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지소(紙所)·와소(瓦所)·염소(鹽所)·자기소(瓷器所) 등으로 불렸다.
- 부곡(部曲):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방 행정 단위. 일반 군현과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이외에도 관련 특수 구역으로 장(莊)과 처(處)가 있었으며, 이들은 왕실에 예속되어 과중한 전조(田租)를 납부한 일종의 장원(莊園)이었다. 향·소·부곡·장·처·진(津)·역(驛) 등을 통칭하여 부곡제(部曲制)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원과 역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신라가 주·군(州郡)을 설치할 때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에 미달하는 곳에는 향을 두기도 하고 부곡을 두기도 하여 소재읍(所在邑)에 속하게 하였다. 즉 향과 부곡은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소·장·처는 고려 시대에 추가로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실제 신라 시대의 사료에는 부곡 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아, 신라 시대 존재 여부는 삼국사기 지리지의 주·군·현 체계 하위에 예속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기반한다.
고려 시대에 향·소·부곡은 군현 체제의 하부 구조로 기능하며 국가의 주요한 수취 단위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 이르러 향·소·부곡은 대부분 혁파되었고, 대개 면(面) 또는 리(里)·촌(村)으로 개편되거나 주현(主縣)·속현(屬縣)으로 승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향·소·부곡이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성격에 관한 학설
향·소·부곡의 성격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학설이 제시되어 있다.
천민설(賤民說)에 따르면, 향·소·부곡의 주민은 일반 양인이 아닌 천민·노비 등 하층 계급이었으며, 이들 지역은 천민의 집단 거주지였다고 본다. 근거로는 다음의 사료가 제시된다.
- 반역 등 국가에 대한 중대한 범죄가 발생한 군현을 향·소·부곡으로 강등한 기록
- 군현민과 진·역·부곡인이 교혼(交婚)하여 낳은 자는 모두 진·역·부곡에 속한다는 기록
- 향·소·부곡 주민에 대한 과거 응시 금지 등 사회적 제약
양민설(良民說)에 따르면, 향·소·부곡의 주민은 본래 양인이며, 천민설의 논거는 적극적인 자료가 되지 못한다고 본다. 천민에게는 일반적으로 성씨가 없던 것과 달리 향·소·부곡에도 군현과 같이 토착 성씨(土姓吏民)의 기록이 있는 점이 반론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 학설은 향·소·부곡의 소멸 과정을 단순한 신분 해방이 아닌 지방 통치 체제와 수취 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향·부곡의 생성 과정이 단일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현이 될 수 없는 규모의 구역에 설치된 사례, 피정복민이나 전쟁 포로를 집단 수용한 사례, 반역향을 천민화한 사례, 인구 증가와 신생촌 발생에 따라 군현보다 늦게 생성된 사례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기능과 소멸
향과 부곡은 주로 농산물 생산을 담당한 반면, 소는 수공업품·광물·수산물 및 일부 농산물(차, 생강 등)의 생산에 특화되었다. 소의 주민은 금호(金戶)·은호(銀戶)·염호(鹽戶)·묵호(墨戶) 등 특정 역(役)을 부담하는 가구로 구성되었다.
소 주민의 저항이나 공로에 의해 소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된 사례도 있다. 1176년(명종 6) 공주 지역의 명학소(鳴鶴所)가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 등 소민의 저항으로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되었고, 소민의 입공(立功)에 의해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된 사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지방 행정 체계의 정비 과정에서 향·소·부곡은 군현으로 승격되거나 직촌(直村)으로 전환되어 소멸하였다. 향·소·부곡의 기능 중 일부는 조선 시대 이후 철간(鐵干)·염간(鹽干)·생선간(生鮮干) 등 신량역천(身良役賤) 계층에게 이어졌다.
주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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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권57,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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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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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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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소'·'부곡'·'향'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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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향·소·부곡'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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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향·소·부곡고」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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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 「고려 부곡제의 구조와 성격」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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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영, 「고려시기의 소(所)에 대한 재검토」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