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린(海麟, 984년~1070년)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법상종(法相宗)의 고승이다. 고려 문종 때 국사(國師)에 올랐으며, 시호는 지광(智光), 탑호는 현묘(玄妙)이다.
출신과 가계
해린은 984년에 출생하였다. 성은 원씨(元氏),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거룡(巨龍)이다. 조부는 길(吉), 부친은 휴(休), 모친은 이씨(李氏)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수몽(水夢)이었다. 문벌귀족인 인주 이씨(仁州李氏)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호의 유래
해린이라는 법호는 스승 관웅(寬雄)이 지어준 것이다. 관웅이 꿈에 바닷가에서 작은 물고기를 직접 잡아 삼킨 꿈을 꾸고, 해몽자가 "어(魚)는 비늘(鱗)을 뜻한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후 승계가 오를 때마다 명료돈오(明了頓悟), 계정고묘응각(戒正高妙應覺), 탐현도원(探玄道源), 통제연오법동(通濟淵奧法棟), 구행요성도수(具行了性導首), 융소랑철(融炤朗徹) 등의 법호를 당대의 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생애와 활동
해린은 이수겸(李守謙)에게 수업하다가 출가의 뜻을 품고 원주 법천사(法泉寺)의 관웅을 찾아가 유식학(唯識學)을 배웠다. 이후 관웅을 따라 상경하여 개경 해안사(海安寺) 준광(俊光)의 제자가 되었다.
- 999년(목종 2):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음
- 1001년: 숭교사(崇敎寺) 개창과 함께 명성을 얻음
- 1004년: 왕륜사(王輪寺) 대선(大選)에 급제하여 대덕(大德)이 됨
- 1011년(현종 2): 진조(眞肇)를 만나 역산법(曆算法)을 배우고 대사(大師)가 됨
- 1021년: 평양 중흥사(重興寺)에서 중대사(重大師)가 된 뒤 수다사(水多寺) 주지가 됨
- 1030년: 개경 해안사 주지가 됨
- 덕종 때: 삼중대사(三重大師)를 거쳐 수좌(首座)가 됨
- 1045년(정종 11): 승통(僧統)이 됨
- 1046년(문종 1): 궁중에 초청되어 유심묘의(唯心妙義)를 강의함
- 1047년: 이자연(李子淵)의 다섯째 아들 소현(韶顯)을 출가시킴
- 1054년: 현화사(玄化寺) 주지가 되어 절을 크게 중수하고 법상종 교단을 이끎
- 1056년: 왕사(王師)에 오름
- 1058년: 봉은사(奉恩寺)에서 국사(國師)에 오름
- 1059년: 내전(內殿)에서 개최된 백고좌(百高座)의 제일 설주(說主)가 됨
- 1067년: 은퇴하여 본사인 법천사로 돌아감
- 1070년 10월: 입적
유산과 문화재
해린의 탑비는 정유산(鄭惟産)이 글을 짓고 안민후(安民厚)가 행서로 써서, 입적 후 15년이 지난 1085년(선종 2)에 세워졌다.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에 있었으며, 현재 탑비는 대한민국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되었다가 반환되었으며, 현재 경복궁에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01호(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로 지정되어 있다.
탑비의 음기에는 해린의 제자들이 수교계업자(受敎繼業者), 수직가계자(隨職加階者), 모덕귀화자(慕德歸化者), 선후사이몰세자(先後師而沒世者)의 네 부류로 구분하여 기록되었는데, 그 수가 약 1,400명에 이른다. 이는 해린이 당대 법상종 교단에서 지닌 영향력의 규모를 보여준다.
역사적 의의
해린은 현화사를 중심으로 고려 중기 법상종 교단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고려 중기 법상종의 교학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 『성유식론(成唯識論)』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였으며, 해린이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