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해롤드 라스키

해롤드 조셉 라스키(Harold Joseph Laski, 1893년 6월 30일 ~ 1950년 3월 24일)는 영국의 정치 이론가이자 경제학자이다. 그는 20세기 전반기 영국 노동당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으로, 런던 정경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생애 및 학문적 배경

라스키는 1893년 6월 30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네이선 라스키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인 면화 상인이었으며, 어머니 사라는 폴란드계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라스키는 옥스퍼드 대학교 뉴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1914년 졸업하였다. 1911년에는 유전학자 칼 피어슨 밑에서 우생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그는 자신보다 여덟 살 연상이었던 비유대인 여성 프리다 케리와 결혼하였는데, 이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빚었다.

1916년 캐나다 맥길 대학교에서 현대사 강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도 강의하였다. 1919년 보스턴 경찰 파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가 심한 비판을 받았다. 1920년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정경대학교(LSE)에서 정부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26년 정치학 교수로 임명되어 1950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사상과 이념

라스키의 초기 저작은 다원주의(pluralism)를 옹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국가가 최고의 주권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은 노동조합, 클럽,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조직에 충성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0년 이후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급진화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동자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자본가 계급이 스스로의 청산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협동조합적 공동체는 폭력 없이는 달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은 비폭력적 민주적 변혁을 약속한 노동당 온건파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는 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한 계획 경제를 지지했으며, 시민의 자유, 언론과 결사의 자유,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도 함께 견지했다. 조지 오웰은 그를 "소속으로는 사회주의자, 기질로는 자유주의자"라고 묘사했다.

정치 활동

라스키는 1920년 런던으로 돌아온 이후 노동당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2년부터 1936년까지 페이비언 협회의 임원을 지냈고, 1936년에는 빅토르 골란츠, 존 스트레이치와 함께 좌파 북클럽(Left Book Club)을 공동 창립했다. 1937년부터 1949년까지 노동당 전국집행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1944년 노동당 대회 의장,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노동당 의장(Chairman of the Labour Party)을 역임했다.

1945년 영국 총선 당시, 라스키가 "노동당이 필요한 것을 일반적 동의로 얻지 못한다면 혁명을 의미하더라도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보도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이를 공격 소재로 삼았고, 노동당은 자당 의장인 라스키를 공개적으로 거부해야 했다. 라스키는 이 발언과 관련하여 데일리 익스프레스 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정부는 그에게 주요 정부 직책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이후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영향과 유산

라스키는 전간기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대변인 중 한 명이었다. 특히 LSE에서 그가 가르친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 중 다수가 이후 독립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캐나다의 총리 피에르 트뤼도 등이 그의 제자였다. 인도에서는 그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54년 인도 정부는 아메다바드에 해롤드 라스키 정치학 연구소(Harold Laski Institute of Political Science)를 설립했다.

그는 시온주의를 지지하여 유대인 국가 건설을 옹호했으며, 인도 독립 운동을 꾸준히 지지했다. 말년에는 냉전과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에 실망감을 느꼈고, 애틀리 정부의 반소련 정책에 깊이 반대했다.

라스키는 1950년 3월 24일 런던에서 독감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저서

  • 《주권 문제에 관한 연구》(Studies in the Problem of Sovereignty, 1917)
  • 《현대 국가의 권위》(Authority in the Modern State, 1919)
  • 《주권의 기초》(The Foundations of Sovereignty, 1921)
  • 《정치 문법》(A Grammar of Politics, 1925)
  • 《유럽 자유주의의 부상》(The Rise of European Liberalism, 1936)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