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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코다산 참사

1902년(메이지 35년) 1월 23일부터 2월 2일까지 일본 아오모리현의 핫코다산(八甲田山)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악 조난 사건이다. 일본어로는 '핫코다 설중행군 조난사건'(八甲田雪中行軍遭難事件)이라고 하며, 영어권에서는 'Hakkōda Mountains incident'로 불린다.

개요

일본 육군 제8사단 소속 병력 210명이 동계 산악 행군 훈련 중 폭설과 혹한에 조난되어, 199명이 사망하고 11명만이 생존한 사건이다. 생존율이 약 5%에 불과했던, 평시 훈련 중 발생한 사고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의 참사였다.

배경

러일전쟁(1904~1905)을 앞둔 일본군은 러시아군이 홋카이도를 거쳐 혼슈 북부로 침공할 가능성에 대비한 방어 작전을 수립하고 있었다. 제8사단은 제해권 상실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아오모리와 하치노헤를 잇는 내륙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핫코다산 일대의 동계 산악 행군 훈련을 계획하였다. 이 훈련에는 제5연대 제2대대 병력을 중심으로 총 210명이 편성되었으며, 지휘는 칸나리 분키치(神成文吉) 대위가 맡았으나, 상급자인 야마구치 진(山口鋠) 중령(2대대장)이 동행하여 지휘 체계가 이원화된 점이 이후 상황 악화의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경과

1월 23일 오전 7시경 부대를 출발한 탐사대는 초반에는 순조롭게 행군을 이어갔으나, 오후부터 급격히 기상이 악화되어 폭설과 혹한이 닥쳤다. 지휘관들은 행군을 계속할지 귀환할지를 두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야간 행군을 강행하였다. 이후 나침반이 얼어붙어 방향을 상실하였고, 비상식량이 동결되어 섭취가 불가능해졌으며, 낙오자가 속출하였다.

1월 25일, 칸나리 대위는 구원 요청을 위해 척후대 12명을 2개 조로 편성하여 파견하였으나, 한 조는 전원 동사하였고 다른 한 조도 민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후 구조대가 파견되었으나 구조대원들조차 동상에 걸리는 등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1월 31일부터 본격적인 구조가 이루어졌으며, 쿠라이시 대위 그룹이 절벽 아래 움푹 패인 곳에서 발견되어 일부가 생존하였다. 최종적으로 2월 2일까지 구조 작업이 진행되었고, 210명 중 11명만이 생존하였다. 생존자 대부분은 심한 동상으로 인해 사지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원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핫코다산 일대의 이상 혹한과 폭설이었다. 여기에 더해 동계 산악 행군에 부적합한 장비와 복장, 혹한 지역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대부분 이와테현·미야기현 출신), 이원화된 지휘 체계로 인한 신속한 의사 결정의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향 및 관련 사항

이 사건은 1977년 일본에서 영화 '핫코다산'(八甲田山, 감독 모리타니 시로, 주연 다카쿠라 켄)으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동계작전과 방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된 바 있으며, 일부에서는 한자 독음인 '팔갑전산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같은 시기에 다른 루트로 행군을 실시한 제31연대 38명은 민간인 안내원의 도움과 풍부한 동계 훈련 경험을 바탕으로 전원 무사 귀환한 점이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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