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박소 신도비(陜川 朴紹 神道碑)는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금성리에 위치한 조선 전기의 문신 박소(朴紹, 1473~1530)의 신도비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었다.
1. 개요 박소는 본관 밀양(密陽), 자 계종(繼宗), 호 석천(石川)이다. 1499년(연산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홍문관수찬, 사간원정언, 이조정랑, 대사간, 이조참판,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화를 면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기용되어 공조판서,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등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2. 비석의 구조 및 형태 이 신도비는 거북받침돌(귀부), 비신(碑身), 머릿돌(이수)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 전기 신도비 양식을 따르고 있다.
- 귀부(龜趺): 용두거북(龍頭龜) 형태로, 등에는 구름무늬와 거북등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다리와 꼬리 표현이 사실적이다.
- 비신(碑身): 앞뒤 면에 비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 이수(螭首): 용머리 형태로, 중앙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쌍룡(雙龍)이 조각되어 있고 주변에 구름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3. 비문 내용 비문은 당대 유명 문장가였던 신광한(申光漢)이 짓고(찬), 한석봉(韓石峰)의 아버지인 한효원(韓孝元)이 글씨를 썼으며(서), 김안국(金安國)이 전액(篆額, 비석 머릿글)을 썼다. 비문에는 박소의 생애, 관직 이력, 학문과 덕행, 기묘사화 당시의 행적, 가족 관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의 정치사 및 서예사, 금석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4. 역사적 의의 이 비석은 조선 중종 연간(15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당시 최고 문장가와 서예가, 전액가가 참여하여 제작된 수준 높은 금석문이다. 특히 한효원의 해서체(楷書體)를 볼 수 있는 드문 사례로 서예사적 가치가 높으며, 기묘사화 전후의 정치 상황과 사림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5. 현황 및 관리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금성리 산 1-1번지 일원, 박소의 묘소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합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각(碑閣) 안에 보존되어 있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