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대야성(陜川 大耶城)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1993년 12월 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및 구조
합천대야성은 합천읍 해발 90m의 취적산(吹笛山, 매봉산) 정상부와 그 능선을 따라 흙과 돌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다. 성의 평면 형태는 자연 지세에 따라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부정형으로 축조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약 2,000m 내외로 추정된다. 서쪽은 황강에 연한 급경사 단애지역이 자연성벽을 이루고 있고, 북쪽을 제외한 삼면으로 황강이 흘러 자연적인 해자를 형성한다. 남서쪽에는 천연단애절벽이 있어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성내 정상부에서는 고령·대구 방면, 삼가·진주 방면, 대병·거창 방면, 초계 방면의 도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역사적 변천
합천 지역은 삼국시대에 대가야의 세력 범위에 포함되었으나,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이후 신라가 565년(진흥왕 25년) 이 지역에 대야주(大耶州)를 설치하고 대야성을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야성은 5세기 말~6세기 초에 초축되고, 6~7세기에 증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642년(선덕여왕 11년)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이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때 성주(城主)인 도독 김품석(金品釋)과 그의 부인이자 당시 김춘추(훗날 태종무열왕)의 딸인 고타소(古陀炤)가 사망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김품석의 부하였다가 아내를 빼앗긴 원한을 품은 검일(黔日)이 백제군에 내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야성 함락은 김춘추가 백제에 대한 복수와 정벌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여 백제를 멸망시키는 과정의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신라 후기에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 사이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면서 대야성이 다시 주목받았다. 927년 후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대야성을 고려가 함락시키고 파괴한 이후, 군사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이때 완전히 폐성(廢城)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및 유구
2003년, 2004년, 2009년에 3차에 걸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체성(體城) 부재는 대부분 훼손되어 성벽 축조 수법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동쪽과 남쪽에 일부 양호하게 남은 성벽이 있으며 잔존 높이는 약 1.5m 내외, 폭은 2.5m 내외이다. 시굴조사 결과 문지(門址), 배수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 건물지, 주거지, 수혈(竪穴), 적석군(積石群) 등이 확인되었다. 서쪽 구릉의 평탄면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군사 주둔 시설로 추정된다. 성 외부에서는 수혈식석곽묘와 횡구식석실묘로 이루어진 고분군이 확인되었다.
의의
합천대야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의 서남쪽 방어와 백제 공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가야·백제의 낙동강 유역을 둘러싼 공방 관계와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