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발생한 반소(反蘇)·반공(反共) 성격의 학생 시위 사건이다. '함흥학생반공의거', '함흥학생반공반소의거', '3·13함흥학생반공의거', '함흥학생사건' 등으로도 불린다.
배경
1945년 8월 일제 패망 이후 소련군이 한반도 북부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함흥 지역에서는 소련군정 아래 함경남도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소련군에 의한 식량 반출과 물자 약탈, 공산당의 학교 교사 점거 등이 발생하면서 주민과 학생들 사이에 불만이 확산되었다.
경과
1946년 3월 11일, 함흥공업학교 학생 약 200명이 '학원의 자유를 달라', '우리의 쌀은 어디로 갔는가' 등의 구호를 내걸고 가두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함흥농업학교 학생 약 600명이 합세하였고, 3월 13일에는 함흥사범학교, 흥남공업학교, 영생중학, 영생고녀, 실과여고, 함남고녀, 함남중학 등 여러 학교 학생 약 5,000여 명이 일제히 궐기하였다. 시민들도 호응하여 총 약 1만 5,000여 명이 거리로 나서 '소련군 철수', '반공반소'를 외쳤다.
진압과 결과
소련군과 보안대가 동원되어 실탄 발포로 진압하였다. 사상자 규모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학생 1명·시민 2명·보안서원 3명 등 총 6명이 사망하고 양측 합계 약 120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다른 기록에서는 사망자와 부상자가 더 많았다고 전한다. 주동자 약 5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재판 절차 없이 소련 시베리아 지역으로 유형 보내졌다. 이후 1957년경 생존자 일부가 평양으로 송환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의의
이 사건은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서 소련군정과 공산당에 저항한 대표적인 학생 운동 가운데 하나로, 대한민국에서는 함경남도민회 등을 중심으로 매년 기념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다만 북한 내에서는 이 사건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