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함평 모씨

함평 모씨(咸平 牟氏)는 전라남도 함평군을 본관(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2015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함평 모씨 20,543명, 함풍 모씨 101명을 합하여 총 20,644명이 있다.

시조 및 유래

시조는 모경(牟慶)이다. 《함평모씨세보》에 따르면, 모경은 중국 홍농(弘農, 현재의 허난성 링바오시 일대) 출신으로, 북송 흠종 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을 지냈다.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이자겸의 모반 음모를 저지하여 일등공신에 서훈되었으며, 이후 귀국하여 홍농후(弘農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금나라가 송경(宋京)을 침입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납치하자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가 송나라가 패망하자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에서는 그를 평장사(平章事)의 벼슬과 모평군(牟平君)에 봉하였다.

본관 연혁

함평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백제 때는 다지현(多只縣)이었으며, 신라에서 다기현(多岐縣)으로 고쳐 무안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 다기현을 모평현(牟平縣)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1409년(조선 태종 9) 모평현을 함풍현(咸豊縣)과 합하여 함평현(咸平縣)으로 개편하였고, 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이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모평의 성으로 모씨가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 인물

  • 모순(牟恂): 1417년(태종 17) 식년시 동진사에 급제하여 거창현감, 사헌부장령, 지합천군사 등을 역임하였다. 1443년(세종 25)에는 군기감정으로서 일본 도적들에게 납치된 조선 백성을 찾기 위해 대마도에 다녀왔다. 세조의 회유를 끝내 거절하여 진주로 유배되었다. 효자로 이름나 정문이 세워졌으며, 진주 모순 정려비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5호로 지정되었다.
  • 모정(牟禎), 모극심(牟克諶), 모수명(牟受明), 모윤성(牟允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병과 대적하였다.
  • 모경관(牟景觀):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하여 좌랑을 지내고, 1757~1759년 제주판관을 지냈다.
  • 모달겸(牟達謙):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바른말을 잘하고 권신들을 가차 없이 탄핵하여 '모장령의 직언'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정현감을 지내면서 청백한 관리 생활로 송덕비가 세워졌다.
  • 모수명(牟受明): 조선 말기의 서예가로, 초서와 해서에 뛰어났으며 그의 서체를 모체(牟體)라 한다.
  • 모충이(牟沖伊): 한국의 독립운동가·의병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현대 인물

  • 모강인(牟康仁): 제24대 경찰청 차장, 제11대 해양경찰청장 역임.
  • 모철민(牟喆敏): 주프랑스 대사,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역임.
  • 모종화(牟鐘和): 예비역 육군 중장, 제25대 병무청장 역임.
  • 모태범(牟太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 모경종: 제22대 국회의원.

과거 급제자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모경관, 모달겸, 모세무, 모세번, 모순)을 배출하였으며, 무과 급제자 3명(모옥성, 모유추, 모두해), 생원시 1명(모응삼)이 있다.

분관 및 집성촌

함평 모씨에서 진주 모씨가 분관되었다. 집성촌으로는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전북 남원군 대산면,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등이 있으며, 20가구 이상 모여 사는 곳을 합하면 30여 군데에 이른다.

함평 모씨는 한국에서 보리 '모(牟)' 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본관으로, 9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의 전통 성씨이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