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최치원 신도비(咸陽 崔致遠 神道碑)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상림공원 내에 있는, 신라 말기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神道碑)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문창후최선생신도비')로 지정되었고,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건립 경위
최치원은 894년(진성여왕 8년)경 천령군(天嶺郡, 지금의 함양) 태수로 부임하여, 위천(渭川)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인공 숲(함양 상림)을 조성하는 등 함양 지역에 큰 치적을 남겼다. 이에 1923년 경주최씨 문중에서 최치원의 학문적 업적과 함양에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도비를 세웠다.
형태
비석은 낮은 기단 위에 귀부(龜趺, 거북 모양 받침돌)를 놓고 그 위에 비신(碑身)을 세운 뒤, 용무늬와 구름 문양이 새겨진 머릿돌(이수, 螭首)을 올린 전형적인 비좌이수(碑座螭首) 양식이다.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조각되었으며, 머릿돌 앞뒤에는 각각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금석문
비명(碑銘)은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文昌侯崔先生神道碑)'이다. 비문에는 최치원의 생애와 함께, 함양 태수로 재직할 당시 "학사루를 건립하고 손수 긴 제방에 나무를 심었다(建學士樓手植林木於長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함양 상림이 최치원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려 준다.
최치원과 함양의 인연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879년 황소의 난 때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885년 신라로 돌아온 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올렸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지방관을 전전하였는데, 그중 한 곳이 천령군(함양)이었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현황
신도비는 함양 상림공원 내 산책로변에 위치하여 상림공원과 함께 잘 관리되고 있다. 주변에는 석재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학사루(學士樓)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탐방객이 함께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