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란드 공작부인 릴리안

생애 초기 및 배경 릴리안은 1915년 8월 30일 영국 웨일스 스완지에서 윌리엄 존 데이비스와 글래디스 메리 커런의 딸로 태어났다. 런던으로 이주하여 모델로 활동했으며, 보그(Vogue)와 같은 유명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1940년 배우 아이반 크레이그와 결혼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헤어지고 1947년 이혼했다. 전쟁 기간 동안 그녀는 영국 해군 여군 부대(Wrens)에서 복무하며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베르틸 왕자와의 관계 릴리안은 1943년 런던에서 당시 스웨덴의 왕자였던 베르틸 왕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곧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왕실 결혼 규정으로 인해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당시 베르틸 왕자는 왕위 계승 서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만약 그가 귀족이 아닌 평민과 결혼할 경우 왕위 계승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왕실의 안정적인 계승을 위해 베르틸 왕자가 결혼하지 않고 왕위 계승권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공식적인 결혼을 미루고 약 33년 동안 스웨덴의 윌레모(Villa Solliden)에서 비공식적으로 함께 살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릴리안은 스웨덴 왕실 행사와 공무에 참여하며 왕실의 일원으로서 비공식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베르틸 왕자의 오랜 동반자로서 인정받았다.

결혼 및 왕실 활동 1976년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이 즉위하면서 왕실 결혼에 대한 규정이 완화되었고, 마침내 릴리안과 베르틸 왕자는 1976년 12월 7일 정식으로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릴리안은 '스웨덴 공주 릴리안'이자 '할란드 공작부인' 칭호를 받았다. 그녀는 자녀가 없었다.

결혼 후 릴리안 공주는 스웨덴 왕실의 인기 있는 일원으로서 다양한 자선 활동과 공무를 수행했으며, 특히 우아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스포츠와 예술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스웨덴 내외에서 왕실의 대표로 활동했다.

말년 및 사망 1997년 베르틸 왕자가 사망한 후에도 릴리안 공주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나,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점차 공개석상에서 물러났다. 2010년에는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았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릴리안 공주는 2013년 3월 10일 97세의 나이로 스톡홀름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스웨덴 왕실장으로 거행되었으며, 긴 세월 동안 이어진 베르틸 왕자와의 사랑과 스웨덴 왕실에 대한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