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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전투

한중 전투(漢中 戰鬪)는 중국 후한 말기인 219년, 촉(蜀)의 유비와 위(魏)의 조조가 한중(漢中)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전투이다. 한중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부에 위치한 분지 지역으로, 파촉(巴蜀) 지방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배경

조조는 215년 한중 태수 장로(張魯)를 격파하고 한중을 점령한 뒤, 장합(張郃)과 하후연(夏侯淵)을 주둔시켜 수비를 맡겼다. 한편 유비는 214년 익주(益州)를 장악한 뒤 한중 확보를 통해 북쪽으로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유비의 참모 법정(法正)과 양홍(楊洪)은 한중이 촉을 방어하고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핵심 지역임을 역설하였다.

전투 경과

유비는 21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중 공략에 나섰다. 전투는 여러 단계로 진행되었다.

장비(張飛)는 파서(巴西)에서 장합과 장기전을 벌여 이를 격파하였고, 마초(馬超)가 이끄는 부대는 상용(上庸) 방면에서 작전을 전개하였다. 유비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진군하여 정군산(定軍山) 일대에서 대치하였다.

219년 정군산 전투에서 황충(黃忠)이 법정의 계책에 따라 하후연을 참살하면서 촉군은 결정적 우위를 점하였다. 하후연의 전사 소식을 접한 조조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향했으나, 유비군은 방어에 주력하며 지구전을 전개하였다. 조조는 장기전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퇴각하였다.

결과 및 영향

이 전투의 결과로 유비는 한중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촉한(蜀漢)의 세력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유비는 이듬해인 219년 한중왕(漢中王)에 즉위하였으며,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제도를 시행하였다. 한중 전투의 승리 이후 유비는 상용 지역까지 점령하여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같은 해 관우(關羽)가 형주에서 오(吳)의 여몽(呂蒙)에게 패사하면서 촉의 북진 전략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한중 전투는 《삼국지연의》에서도 상세히 묘사되는 장면으로, 장비와 장합의 대결, 황충의 정군산 전투, 조운의 한수 전투 등 다양한 일화가 전한다. 특히 조조가 한중 공격의 어려움을 두고 "계륵(鷄肋)"이라 표현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한중 전투는 삼국 시대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전투 중 하나로, 이후 촉한의 북벌 기반을 마련한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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