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호(韓主浩, 1956년 9월 28일 ~ 2010년 3월 30일)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해군 준사관(준위)이자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요원이었다. 사후 무공훈장 충무장이 추서되었다.
생애
195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75년 2월 서울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하여 호위함 부산함(FFK-959)에 승조하였다. 1976년 해군 특수전 초급반(UDT/SEAL) 제22차 과정을 수료하고 수중폭파대(UDT)에서 훈련교관 및 작전요원으로 복무하였다. 2000년 해군 준사관 제41기 과정을 수료하고 준위로 임관하였다.
천안함 구조 활동과 순직
2010년 3월 2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일대에서 초계함 천안함(PCC-772)이 침몰하자, 한주호 준위는 해군 특수전 여단 작전지원대 소속으로 구조작전에 자원하여 참여하였다. 당시 53세의 고령이었으나 풍부한 잠수 경험을 바탕으로 극한의 환경에서 실종자 수색을 계속하였다. 2010년 3월 30일, 잠수 수색 활동 중 잠수병(감압병)으로 실신하여 미 해군 구조함 살버(SALVOR)함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업적
특수전 요원 양성: 35년의 군 경력 중 19년 6개월을 해군 특수전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재직하였다. 해군 UDT/SEAL 수료자의 절반 이상이 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특수전 장비 개선: 선박 침투습격용 사다리, 저격수 횡이동 표적기, 탄·뇌관 보호상자 등을 개선·제작하였다. 그가 제작한 침투습격용 사다리는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에서 사용되었다.
청해부대 활동: 2009년 청해부대 1진(문무대왕함)에 선박검색 요원으로 승조하여 총 7차례의 해적선 퇴치 작전에 참여하였다.
폭발물 처리: EOD(폭발물처리) 요원으로서 유실지뢰 등 각종 폭발물을 처리하는 데 활약하였다.
사후
순직 직후 보국훈장 광복장이 수여되었으나, 그 공로에 비해 부족한 예우라는 여론이 제기되어 충무무공훈장이 추가 추서되었다. 장례는 해군장(5일간)으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교3묘역에 안장되었다. 2011년 3월 30일 진해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초등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에 '책임을 다한 숭고한 삶' 편의 일부로 그의 이야기가 게재되었다.
상훈
- 2010년 무공훈장 충무장 (천안함 수색·구조 공로)
- 2010년 보국훈장 광복장 (35년 근속 공로)
- 합동참모회의 의장 표창
- 국방부 장관 표창
- 국무총리 표창
경력
- 1975년 2월: 수도공업고등학교 졸업, 해군 부사관 제36기 입대
- 1976년 5월: FFK 부산함 내연사
- 1976년 11월: 해군 특수전 초급반(UDT/SEAL) 제22차 과정 수료
- 1976년: 미합중국 해병대 특수전 단기과정 수료
- 2000년: 해군 준사관 41기 과정 수료, 준위 임관
- 2009년: 청해부대 제1진 선박검색요원 파병
- 2010년 3월 30일: 천안함 구조 활동 중 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