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교(韓翼敎, 1886년 2월 24일 ~ ?)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관료 겸 금융인, 기업인이다. 본관은 청주이며, 본적은 경성부(현 서울) 소격동이다.
생애
1899년 사립 중교의숙 영어과에 입학하였고, 1902년 사립 낙연의숙에 들어가 1904년 졸업하였다. 1905년 관립 일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06년 탁지부 주사로 임명되었다. 1908년 일본 오사카 조폐국에서 견습을 받았고, 이후 중앙금고와 제일은행, 한국은행에서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1년 한성은행 동막출장소 주임을 시작으로, 1912년 한성은행 대전지점 지배인대리, 1914년 본점 지배인대리, 1917년 본점 부지배인을 거쳐 1920년부터 1926년까지 한성은행 이사 겸 지배인을 역임하였다. 1921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 이사, 경성가축주식회사 감사,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 감사, 조선토지경영주식회사 감사역 등을 지냈다. 1920년과 1923년에는 경성부협의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조선실업구락부 이사, 1925년부터 1929년까지 동민회 평의원을 역임하였고, 1931년부터 1940년까지 월간 《조선실업구락부》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평의원을 지냈다.
1944년 2월부터 1945년 광복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실업보국회 감사 및 평의원으로 선임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부에 송치되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6일 납북되었으며, 1955년 6월 25일 생사불명기간 만료로 인해 실종 처리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중추원 부문, 친일단체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